목화레터 3화 침범

by 김목화

안녕하세요.

이 편지는 2025년 02월 02일 오후 2시경에 쓰였습니다.


위의 문장을 적을 때마다 재밌는 점이 저는 02월 02일에 썼지만, 여러분들에게 언제

닿을지 모른다는 부분입니다.


메일을 열지 않으면 사실, 4월, 11월 언제든지 발송되는 맥락이기도 하니까요. 뜬금없지만 메일링을 쓸때 이용하는 글씨체는 제 엄마의 글씨체와 비슷한 글씨체인데,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도 좋아하는 글씨체라고 하더군요. DOSPilgi라는 글씨체입니다. 아쉽게도 메일에서는 글씨체를 적용하기가 힘들어서 저만 보고 있습니다.


IMG_3744.jpeg

오늘은 침범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침범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침범 1. 남의 영토나 권리, 재산, 신분 따위를 침노하여 범하거나 해를 끼침.


제가 앞으로 말하는 침범이란, 영토, 권리, 재산, 신분 중 영토를 의미합니다. 물리적 영토와 영역을 포함해서, 정서적 영토를 의미하기도 하겠네요. 언젠가 자주 제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내 방이 있지만 없어.”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저는 부모님 댁에서 살고 제 방이 물론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제 방과 정서적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더 간결하게 말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 고유의 방이 아니라는 것이죠.


제 방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은 가깝습니다만 그렇다고 편하지는 않아요. 실제로 제 집은 제가 15년 정도 전에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살다가, 재작년에 다시 이사를 온 곳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풍경이나 다른 여러 장소는 익숙하지만, 익숙함이 곧 편안함으로 이르지는 않더라고요.


갑자기 이렇게 침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제가 오늘 매우 화가 난 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청소광이라고 할 정도로, 집착적으로 환기를 하고, 이곳저곳을 반질반질하게- 닦으십니다.





저는 제 방을 제가 컨트롤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상태가 좋지 못함이 방의 청결도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업을 방에서 할 때도 있기 때문에 제 영역은 제 고유함이 묻어있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흐트러지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요.그런데 아버지가 청소하시면 제 방은 매우 깨끗해지지만, 제 물건을 제가 찾지 못하는 경우처럼 웃기는 일도 (사실 웃기진 않음.) 그로 인해서 제가 화가 나는 일도 되게 많았습니다.


오늘 있던 일은 굉장히 단순했습니다. 아버지는 청소하는 중이었고, 저는 나갈 채비를 마치고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청소할 때 뿌리는 물을 장난스럽게 뿌렸고 제 방을 청소하고 가셨습니다. 저는 물을 뿌리지 말라고 했지만 이를 무시당하고 제 공간을 침범당했다고 느꼈습니다. 엄청난 화가 났습니다.


이제 이 순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제가 왜 화가 났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실제로 제 지인 중 제 고민을 말하면 ‘그게 뭐 어때서?’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냥 예민한 사람이 되고요.

사실 단순히 장면으로 보면 물뿌리고 청소를 한 것이지만, 저는 그동안 쌓인 맥락이 있기 때문에 겹겹이 만든 패이스트리를 누군가 밟아버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매우 화가 나서 대충 짐을 챙기고 외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한참을 버스정류장에서 앉아 있었습니다. 사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돈을 별로 쓰고 싶지도 않았고요. 동생에게 상황 설명을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만히 앉아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는 제가 한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만 했습니다.


“너의 공간을 침범당해서 그런 거잖아. 엄마도 이해가 가.”


이상하게도 저는 그 한마디 말에 화가 스르르- 풀려버렸습니다. 저는 분명. 너무 화가 나서 이 집안에서 못 살겠어. 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정말로 쉽게 화가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레터에 보낼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큰 소중한 영역에 대한 침범이 무엇인가요? 제 말에 공감이 되나요?

당신은 당신의 방에서 온전히 당신으로 있을 수 있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비단 직업과 젠더와는 무관하게도 모든 사람에게 각자가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늘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내가 누군가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던 선을 넘어버린 경험이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당신도 당신만의 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슈발슈발 험악한 말을 하고 6년 전 끊은 담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이해받은 저처럼. 당신 곁에 누군가 한마디로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네요.


당신이 침범당하지 않길 바라면서

오늘의 노래 Luther-Kendrick Lamar, SZA


목화드림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