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선 서비스를 기대하지 마세요

손님은 왕이 아니니까요

by 대니정

"손님은 왕이다."


세간에 유명한 이 문구는 세계적인 호텔인 '리츠 칼튼'의 창업자 세자르 리츠의 어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나 내가 유학했던 옆나라 일본의 경우 사회생활이라고 하면 어떤 종류의 일에서건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 정신'을 교육받게 된다.


조직마다 정의하고 추구하는 서비스 정신의 형태야 다를 순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성심성의껏 고객의 편의를 도와야 한다."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을 숙이고 들어가는 겸양적인 자세로 고객을 접대하는 것이다.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큰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접객 문화에서 살아온 나에게 말레이시아의 접객 문화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말레이시아에선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왕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가게의 전반적인 운영이 고객의 니즈(Needs)나 편의를 고려하기보단 주인장 자신의 편의와 입맛대로 결정된다.


당연히 이 경향은 프랜차이즈 보다 개인 사업일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를 두 가지 정도 소개해 보고 싶다.



첫 번째, 회사 근처에 있는 유명한 치킨라이스 집이다.


페낭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인 이 식당은 골목길에 있는 작은 가게다.


메뉴는 오직 하나, 하이나니즈 치킨라이스 (Hainanese Chicken Rice)이다.


삶은 닭 요리인데 단순히 닭을 물에 넣고 삶는 것이 아니라 끓는 물에 잠깐 넣었다 뺏다를 반복하여 익힌다.


이 경우 살은 누그러지지 않으면서 닭 본연의 기름기만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에 닭고기 특유의 풍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말레이시아 화교들의 소울푸드라고 말할 수 있다.


풍.JPG Hainanese Chicken Rice (from Penang Local)


나의 단골집인 이 가게의 영업시간은 처음 말레이시아에 왔던 그때의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일-목 오전 10시 - 오후 3시까지 (닭 소진 시 조기마감), 금토 정기휴무"


일단 영업시간이 5시간 밖에 되지 않으며 그마저도 10시 시작이라 오직 점심 장사만 한다.


그마저도 10시에 오픈런을 하려고 하면 문도 안 열었으며 10시 10분은 되어서야 겨우 열어준다.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정도의 의례적인 말조차도 없다. 그냥 팍 열고, "Hi, come in."


따로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기 때문에 주문도 직접 닭을 썰고 있는 판대에 가서 말해야 한다.


금토가 정기 휴무인 것도 기가 막히다.


'무슨 공무원도 아니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금토에 정기휴무를 한다고? 당최 이게 무슨 경우일까?'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일주일 중 가장 메인 타임이라고 할 수 있는 금요일, 토요일을 쉬겠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나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근데 이런 의문점을 한 번에 상쇄해 버리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음식이 너무 맛있다.


가격도 합리적이라 참 여러모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너무 많지만 하나만 더 소개해 보자면, 단골 프린터집이 떠오른다.


해외에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종이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프린터기를 하나 구매하자니 가격대가 꽤 있는 편이고 무엇보다 나그네 인생 특성상 짐을 최소화해야 해서 매번 망설이다 안 사게 된다.


이 집의 영업시간은 정말 국가기관급 표준 근무시간 그 자체다.


'평일 9 am - 6 pm / 주말 휴무'


"프린트하고 싶어? 그럼 반차 쓰고 와." 딱 이런 마인드다.


가게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편의와는 관계없이 사장 본인에게 전적으로 편리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일전에 200 페이지 가량 되는 교재를 제본 뜨는 것을 부탁한 적이 있는데 내 근무시간이 딱 오후 6시에 끝나고 가게도 집에서 가까워 10분만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메시지로 물었다.


당연히 "Okay la!"라는 답변을 받을 줄 알았지만, 결과는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No, I have to go home."이었다.


너무나도 정갈한 메시지와 뭔가 모를 묘한 미소를 띤 이모티콘이 아이러니한 귀티를 형성하면서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일단 대책 없이 알겠다고 하고 일에 열중하는 사이 어느덧 퇴근시간이 될 무렵 메시지가 하나 왔다.


"Your book is here."


심플한 문장과 함께 사진이 한 장 왔다.


가게 대문 손잡이 틈에 내 교재를 끼워 놓았다. 구겨질 듯 안 구겨지는, 떨어질 듯 안 떨어지는 오묘한 각도와 위치선정이었다.


실제로 물건은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가격 역시 합리적이다.

shake.JPG Equal Relationship (from iStock)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이곳 말레이시아에서는 상인과 고객이 철저하게 대등한 관계라는 점이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식의 문화권인 한국과 일본에서 살아온 나에겐 이 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나 역시 돈을 쓰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대접받아야 하고 파워 밸런스도 가져가야 한다는 마인드가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상인은 말 그대로 물건을 공급하는 사람, 고객은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일 뿐이다.


저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누가 더 위라거나 그런 거 없다.


즉 그저 서로의 역할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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