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쓰레기 국

by 조경래 기술사

어릴 적 시래깃국에 먹는 아침 밥상이 눈물바람으로 끝나는 일이 더러 있었다.

맛도 이상한 것이 이름마저 시래기라 하니, 내가 가진 버캐부러리를 기반으로 사람 못 먹을 것을 먹고 있다는 나름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는데, 장난수 많은 젊었을 적 엄마는 쓰레기통에서 주워와 깨끗이 빨아서 끓인 거라고 한다.


그 말이 더 곧이 들리니 안 먹겠다고 버티다 보면 밥상머리는 매타작으로 끝나는 그런 스토리이다.


물론 지금의 엄마는 30년 전부터 부처님 제자가 되고 보기도 아까운 자식들 매타작으로 점철된 젊은 시절을 매일 108배를 하며 참회하신다고 한다.


쉰 세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엄마의 매타작이다.


지지난해 겨울에 형열이네 농장에서 심어 키우고 말린 거라고 라면박스로 하나를 받았는데, 그것들이 이제 반찬이 되고 국거리가 되어 만나고 있다.


어렸을 적에는 이 맛을 왜 알지 못했을까나..


단출한 저녁밥상에 시래기 국 말고도 더덕무침, 멸치볶음, 콩자반 이렇게 3찬을 세팅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더덕은 껍질을 손질하고 편으로 썰어서 큰 딸 손 많이 안 가게 반제품을 만든 것을 장모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 장모님은 군 단위 지역사회에 사시면서 여러 동생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셀럽 할머니인데, 그 비결은 남의 말 잘 들어주고 자기주장은 어지간하면 내놓지 않는 것인데..


농사 한 뼘 짓지 않는 장모님에게 따르는 동생들이 상납한 농산물들은 보일러 들지 않는 작은방에 두었다가 대개 우리 집으로 실려온다.


멸치는 지난 12월 아빠가 보냈다는 편강을 스티로폼 박스 안에 소리로만 확인했다가 그저께 삼일절 기념으로 열어보니 편강과 함께 들어있던 것이다.


삼일절 휴일에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Hey를 1시간 반복 듣기를 하며 깐 멸치이니, 이 멸치볶음에는 스페인 노래 가사 섞여 있는 셈이다.


저녁을 이렇게 먹으려고 천안에서 올라오는 퇴근길 차 안에서 장모님, 엄마, 아부지에게 전화를 다 돌려 안부를 물었던 모양이다.


마누라 없는 금요일 혼밥이 나쁘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즐거운 인생 [Life is Beautif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