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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군대 이야기

by 조경래 기술사

상병 계급장을 달고

그 해 여름 두 번째 유격훈련을 받았다. 누구도 열외 없다는 유격훈련이 끝나면 24시간을 걸어서 자대로 복귀하는 100km 행군이 있었는데 30년 세월이 더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유격이 끝나고

자대 복귀하는 길은 대개 여름 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시작된 행군은 그날 낮과 밤을 꼬박 걸어서 새벽시간에나 자대에 복귀하며 끝이 난다. 이미 다 적셔버려 철벅거리는 군화에 판초우의 뒤집어쓰고 부식 차로 보급된 똥국과 밥을 길가에서 먹는 것으로 삼시세끼를 해결하는데 간혹 나오는 전투식량과 컵라면 MSG 맛 빼고 그 짠밥이 맛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녁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우리는 작은 냇가를 끼고 있는 도로를 걷고 있었고, 그 개천을 건너에 오막살이 외딴 민가가 하나 있었는데, 그 집 마루에 저녁 등불이 따뜻하게 밝혀지는 그림이 지금도 생각난다.


집주인 노부부가

뽀송뽀송한 마루에 쌈채와 풋고추로 차린 저녁밥상이 너무도 부럽기만 해서 평생 밥만 먹여줘도 그 집에서 머슴 살고 싶었던 기억이 그랬고..


또 기억나는 낮시간 풍경은

수컷 병사들 행군길 건너 맞은편에서 양산을 받쳐 들고 오던 젊은 여인의 분내(화장품 냄새)와 분홍색 원피스가 그랬다.


족히 10킬로미터를 그분(화장품) 냄새를 생각하며 걸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처절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는 병사들이 견뎌야 하는 것은 100km라는 거리가 아니라 어쩌면 날이 새어야 끝나게 되는 국방부 시간이었을게다.


유격장에서 누더기 같은 올빼미복을 입고

칼같이 각 잡아 잘 차려입은 조교들에게 훈련을 빙자한 죄수 취급 수모를 받은 병사들 중 자대 복귀하며 마주치게 되는 민간인들의 평온한 일상에 여러 명이 탈영 카드를 만지작거렸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내가 춘성군 신북면 102 보충대로 입대하던 날로 만 32년 되는 날이다.


청량리에서 입대 전야를 보내고 춘성군에서 머리를 자르고 마지막 식사를 춘천 막국수로 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여친 소화(가명)가 보충대까지 동행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입대가 머 대단한 거라고 그리 했는지 모르겠다.


보충대에서 자대 배치를 받는데, 당사자들은 깜깜이로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이동 수단이 버스를 타게 되면 편한 곳이고 60 트럭을 타는 게 후 순위고, 소양강 배를 타면 30개월 까배기처럼 꼬이는 군생활이 될 거라 했는데..


보충대 3일 차

육공트럭을 탑승하라 해서 최악은 면했구나 싶었는데, 소양호 선착장에서 하차하여 배를 타게 되었다.


지금은

102 보충대가 없어졌고, 내가 근무하던 양구의 2사단도 없어졌다고 들었다. 그 당시 여친 소화는 결혼하고 남편과 이혼하고 캐나다에 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들은 30년 지난 군대 이야기처럼 남의 일이 되었지만,


비 오던 그날

노부부의 저녁밥상을 비추던 따뜻한 불빛도 아련하게 그립고 무채색의 군복 무리에 환한 분홍색 원피스에서 쏟아지던 화장품 냄새가 아직 그 강원도 산골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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