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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호미질

by 조경래 기술사

사람이 풀을 이길 수가 없으니 농약 제초제를 써야 한다고들 한다.


오월이 안된 지금..

마당에는 자연스럽게 날아온 풀씨들이 뿌리내리고 그렇게 자란 들풀들에 화초들이 잠식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볼까 하는 방법적 궁리에서 시작한 생각이 꼭 그래야만 하나 하는 근원적 회의로 돌아서고 있다.


이제 풀 뽑는 일이 하기 싫어진 거다.


생각 없이 보아도..

잡초랄 것에 대해서는 그런 마음이 덜한데, 땅 깔에 드러눕다시피 한 크로버류의 작고 노란 꽃잎을 뽑자고 달려들어 가까이 보니, 자연이 만들어낸 색상과 기하학적 대칭이 참 정교하고도 예쁘다.


어떤 놈은 사람들이 분류한 화초의 영역에 간택되어 남게 되고 어떤 녀석은 그렇지 않아 호미질을 당하는데, 순순히 뽑혀 주지 않는 인발 응력이 성가시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젖을 물고 있는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내려 하는 것 같아 풀끄댕이 아픈 감각이 내 손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참말로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잡초 건 아니건..

그 경중을 다툴 수 있는 매겨진 값이 있는 게 아닌 다 같은 생명인데 인간의 영역에 뿌리내린 죄로 받는 벌이 가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호미질은 기계적으로 계속된다.


가지치기 잘된 나무와..

허락받은 화초만 있는 단정한 정원에 비교하여, 이따금씩 드나드는 시골집 마당에 들풀들이 자리 잡고 뿌리를 내려 무성해지면, 사람들 머리에 정해진 생각으로는 게으른 사람의 관리 안된 마당 내지는 사람 발길이 들지 않은 폐가라는 생각이 들겠다.


그렇다고 해서 잡초들이 딱히 직접적인 유해를 준다거나 거두어 먹을 곡식들과 생존 경쟁을 하는 경우도 아니니, 어쩌면 잡초를 뽑는 것은 보는 눈을 의식한 타율적으로 행하는 체면치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두어 시간 계속되는 호미질에..

"사람의 일이란 어떤 것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로 단순화해버린 버트랜드 러셀의 썰이 생각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애석하게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여기저기 물건을 재배치하려는 습성을 가진 동물들이고, 호미로 풀을 매는 일 역시 그런 해야 할 무엇인가를 찾은 것 중 하나의 아이템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사각사각..

호미에 다진 흙 부서지는 소리가 좋기도 하지만, 흙과 교신하는 모종의 느낌이 있다. 평생을 허리 구부리고 밭일하던 할매들이 이 소리에 반해서 평생을 밭에서 살았나 부다 했는데.. 두어 시간이 나에게는 한계이다. 가뜩이나 불편해지는 허리에 더 이상 호미질을 할 수가 없다.


인천에서 내려올 때

형렬이네 농장에서 애플민트와 스피아민트 그리고 방앗닢과 캐모마일을 한 삽씩 떠왔고, 그것을 고창 집 마당에 옮겨 심었다.


다른 풀들보다

번식력이 강한 허브 풀들이 우세종이 되면 좋겠다는 발상으로 한 일인데.. 잘 되었으면 하는 내 생각과는 달리 마당을 점령한 들풀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 달에..

한두 번 내려와서 저 풀들을 어찌 이길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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