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러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도시로 왔다. 남들과 똑같이 돈과 쾌락을 좇는 사람으로 공동체적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돈과 쾌락을 좋아하여 멋진 옷을 즐겨 입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비겁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학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도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보통 사람이었다.
그는 이 도시에 온 이후 처음으로 일요일에 박물관과 동물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박물관을 구경하다 전시된 조그맣고 까만 구슬 하나를 손에 쥐게 된다. 주머니에 넣고 나온다. 식사를 하면서 이 구슬을 냄새 맡고 입에 갖다 대었는데, 입안에서 재빨리 녹아버렸다.
그리고 지글러는 다시 전차를 타고 동물원을 방문한다. 정문 앞에 서 있는 원숭이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 들린다. <잘 지내고 있나, 친구?>
자글러는 현기증이 나 재빨리 등을 돌려 나오자, 원숭이가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 여전히 건방지구먼! 발바닥이 평평한 바보!>
바다표범 쪽으로 건너가니, <설탕 좀 주게나, 친구!> 그가 설탕이 없는 걸 확인하자, 바다표범들은 그를 흉내 내며 거지라고 놀려댔다.
사슴, 산양, 멧돼지, 곰에게도 갔다. 모두 멸시하지는 않았지만 환영받지는 못했다. 동물들은 다들 인간을 끔찍하게 생각했다. 추하고, 냄새나고 품위 없는 두 발 달린 인간이 발쑥하게 옷을 차려입고 멋대로 돌아다니는 꼴을 의아하게 여겼다.
지글러는 모든 사고의 습관에서 벗어나 다시 의혹의 시선을 인간들에게 던졌다. 동물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고통과 불안을 이해줄 눈동자를 찾았다. 많은 관람객을 유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인간은 어느 구석에서든 품위, 천성, 고귀함, 조용한 우월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것은 말쑥하게 차려입은 이 인간이라는 동물들이 실은 타락하고 위장된 기만적 행위를 하는 생명체였다.
지글러는 스스로 수치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헤매고 다녔다. 이제 그는 모자를 벗어던지고, 장화를 벗고, 넥타이를 풀어헤친 채 울부짖으며 큰 사슴 우리의 창살에 몸을 비벼대었다. 결국 그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붙잡혀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위선으로 똘똘 뭉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봐도 인간은 정말 위선적이다. 아무리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 현자, 성인의 삶의 행태를 봐도 마찬가지다. 결국 신은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게 인간을 만든 것이다. 이 우주에서 더 다양하게 자신을 표현해 보라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