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영혼의 빚은 갚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 선택이 영혼의 진짜 성장에 부합하는가?

by 정강민

저녁노을이 숲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람은 나뭇잎을 살짝살짝 스치며 지나는 중이었다. J는 돌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늘 그렇듯 조용히 곁을 지키는 ‘빛’이 있었다. 말없이 차를 마시던 J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왜 나는 자꾸 같은 문제에 부딪히는 걸까. 또 그 일, 또 그 사람… 마치 도망가도 계속 따라오는 그림자 같아.”


빛은 잔잔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영혼의 빚은 갚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빚이라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환생과 카르마 법칙에 따르면 자신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확인한 영혼은 지금까지 배우면서 확보한 영적 자산을 활용하여 올바른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설계하지. 지금 삶에서 카르마의 쓴맛을 보고 있다면 여태까지 그 카르마의 댓가를 요리조리 피해 다녔거나, 전생에서 죽으면서 갚아야 할 빚도 자동으로 변제되었다고 착각한 거지.”

빛은 다시 말을 이었다.

“잘못이라기보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숙제라고 보면 돼. 전생에서 덮어두고 도망쳤던 것들, 감정, 책임, 결단. 삶은 언젠가 그걸 마주하게 돼. 정면으로.”


“그럼 나는 이번에도… 그걸 또 피하고 있는 거야?”

“이미 눈치챘군” 하며 빛이 미소를 보였다. “같은 장면이 반복될 때는 이유가 있어. 작은 영혼은 그것을 ‘불운’이라 부르고, 깨어나는 영혼은 그것을 ‘기회’라 불러. 성장의 문턱이지.”

빛은 말을 이었다.

“고대의 현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 작은 영혼은 아직 스스로를 성찰할 줄 모른다. 그저 매번 닥쳐오는 상황에 무방비로 부딪히며 고단한 삶을 이어갈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생조차도 그들 영혼의 여정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성장의 일부다. 비록 스스로 결단을 내릴 정도로 충분히 깨어나지는 못했지만, 이전보다 더 고된 시련 앞에서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수준에 맞는 성장을 조용히 이루어가지.”


J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은 노을은 이제 자줏빛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왜 기억이 안 나는 걸까? 사후에 계획했다면서. 이런 상황이 닥치면 ‘아, 이거 연습했지’ 하고 떠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전생에 계획했지만 이번 생의 물질 세상은 시야에 한계가 있어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지 않아, 당장 코앞에 닥친 나쁜 일만 눈에 들어오지. 또 전생에 겪었던 어려운 일들이 또 감당하기 불가능하게 느껴지고, 도저히 해낼 수 없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지. 그건 시험지를 보고 나서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과 같아. 실전은 연습과 다르거든. 현실이라는 무대는, 기억을 덮고도 깨어 있을 수 있는지를 보는 거야. 눈앞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성숙했는지를 보는 거지.”

“그럼… 난 아직도 미숙한 거구나.”

빛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미 너는 여기까지 왔잖아. 질문을 던졌고,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어. 그건 아주 큰 성장의 신호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뭇잎 몇 장이 무릎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J는 다시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정말 그 빚들은 모두 갚아야만 없어지는 거야? 어떻게든 피해 다니다 보면 그냥 사라지지 않아?”

빛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육신을 떠난 후 지난 생을 관찰하고 점검하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 아, 내가 아직 이 문제를 정복하지 못해서 자꾸 발목이 잡히고 있구나. 해결하기 전까지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겠구나. 옆집 이웃에 대한 나쁜 감정도 내가 다스리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겠구나.”

빛은 말을 이었다.

“사라지지 않아. 갚기 전에는. 영혼의 법은 인간 사회처럼 파산도, 면책도 없어. 다만… 너는 빚을 갚을 때마다 더 강해지고, 더 깊어져. 결국 그 빚은 너를 얽매는 사슬이 아니라, 너를 빛으로 데려가는 사다리가 돼.”

J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떤 일을 해야 그걸 갚을 수 있을까?”

빛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질문은 곧 네 다음 삶의 방향이야. 누군가는 용서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누군가는 더는 도망가지 않아야 해. 그 모든 과제의 바닥에는 하나의 질문이 숨어 있지. ‘이번 생에 나는 얼마나 사랑했는가.’”

J는 마치 마음 한켠이 풀리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태양과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급히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잠깐 J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선택이 영혼의 진짜 성장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을 늘 하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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