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기쁨과 감동보다 고통이 자신을 더 깊게

자각하게 만든다.

by 정강민

붉게 물든 단풍잎이 바람에 흩날렸다. 낙엽이 깔린 산길 위로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고, 발끝엔 바삭한 소리가 따라붙었다. J는 무심코 긴 숨을 쉬며 말했다.

"힘이나 말로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것 같아. 세상이 왜 이리 얽혀있는지 모르겠어."

빛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걷는다
"그건 너의 안이 아직 시끄럽기 때문이야. 조용한 명상 상태에 이를 때, 너는 네 안의 보물창고를 열 수 있어. 그곳엔 외부의 힘이나 꾀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해결책들이 숨어 있지."


J는 작은 숨을 내쉰다.
"명상 속의 침묵... 그건 어떻게 찾아가는 걸까?"

빛이 말로 호흡하듯이 말한다.
"침묵은 도망치는 곳이 아니라, 맞서는 공간이지. 세상의 소음과 너 자신의 속삭임 사이에서 가장 순수한 진심이 떠오를 때, 너는 비로소 그 침묵과 하나가 될 수 있어."

J는 잠시 멈춰 섰다. 바람이 한 줌 낙엽을 공중에 흩뿌렸다. 그 잎들이 땅에 닿기도 전에 빛이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게 뭔지 알아? 사람들 마음속에 숨은 저의. 마치 겉으론 미소를 띠고 있지만, 속으론 계산하는 그런 마음 말이야."

빛은 다시 말을 이었다.
"위선과 비슷한 거야. 그것은 영혼의 계좌를 고갈시키는 독이야. 그런 거짓된 마음은 결국 큰 카르마의 빚이 되어 돌아오게 돼."


J는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근데 그런 사람들도 잘 살아가잖아. 가끔은 나만 바보가 된 기분이 들어."

빛의 목소리도 조금 높아졌다.
"그건 지금 너의 눈이 오직 '즉시의 결과'만 보기 때문이야. 하지만 영혼의 세계는 시간을 달리 써. 선의는 즉시 보상받지 않지만, 결코 소멸되지 않아. 그것은 미래의 너를 위한 씨앗이 되지."


둘은 천천히 산책을 계속했다. 낙엽 사이로 뿌연 햇살이 스며들고, 멀리서 풀벌레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J는 문득 물었다.

"어떤 현자는 환생이 600년에서 1200년이 걸린다고 했대. 환생이 정말 있다면, 왜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는 걸까?"

빛이 말을 이었다.
"성장을 위한 여백이 필요하거든. 이전 생과 비슷한 환경에 곧바로 다시 태어나면, 과제를 풀 기회조차 없이 같은 실수만 반복하게 돼.”

J는 갸웃뚱하며 말을 이었다.
"근데 이상해. 어려워야 성장하는 거 아닌가? 왜 같은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는 게 낫다는 거지?"

빛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무심히 바라보며 말한다.
"진짜 어려움은 상황이 아니라 깨달음의 깊이에서 와. 같은 문제에 묶이면 행동은 바뀌지만 의식은 제자리일 수 있어. 시간은 그 의식을 새롭게 리셋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지. 그래야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이끌 수 있어."


J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어떤 사람은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하겠네."

빛이 말한다.

"맞아. 어떤 이는 특별한 목적을 갖고 금방 다시 돌아오고, 또 어떤 이는 세상이 자신을 이해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오래전 시대를 앞서갔던 현자들은 세상이 그의 수준을 따라잡는 동안 기다려야 하므로 만년 이후에 환생할 수도 있어. 왜냐하면,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완성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지."

잠시 말이 멎었다. 바람이 잎사귀들을 다시 한번 흔들었다. J는 그 고요 속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삶은 시험이구나. 통과해야만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빛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험은 벌이 아니야. 문이야. 두려움 없이 그 문을 열 수 있는 자만이 다음 방으로 나아가. 고통 없이도 성장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고통을 통해서 더 깊은 진실에 닿게 되지."

J가 다시 묻는다.

"성장은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니?"

"아니, 고통은 자각의 촉매일 뿐이야, 기쁨과 감동 또한 성장을 불러오지. 다만, 인간은 고통을 통해 더 빨리, 더 깊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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