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무, 새, 꽃도 환생할까?

나쁜 것을 제거하는 것, 그게 다음 생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by 정강민

가을. 잎사귀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앉고 있다. 붉고 노란 잎들이 땅 위에 내려앉은 모습은, 마치 어머니 품에 돌아온 자식들처럼 편안해 보였다. J는 친구 같은 스승 ‘빛’과 함께 산책길을 걷고 있다. 낙엽이 사박사박 발에 밟히는 소리가 나직한 침묵을 채웠다.


J가 먼저 입을 열었다. “빛, 나무도 다시 태어난다는 말, 정말이야? 나무가 어떤 경험을 한다는 건지, 난 잘 상상이 안 돼.”

빛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굽은 단풍나무를 바라본다.

“네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낙엽도, 어쩌면 아주 오래전엔 하늘을 날던 새였을지 몰라. 지금 이 나무도, 언젠가 흐르는 물이었을 수 있어. 생명은 껍질을 바꾸며 계속해서 경험을 쌓아가는 거지. 지각 능력을 갖춘 생명이 있는 곳에는 환생의 법칙이 작용해.”


“그럼...... 나무도 우리 인간들처럼 배워야 할 게 있다는 거야?” J가 물었다.

빛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모든 생명은 배워. 나무는 햇살과 바람, 계절의 변화로부터 배우고, 꽃은 피고 지며 배우고, 새는 바람을 타며 배우고, 짝을 찾고 둥지를 만들며 배운다. 작은 배움이 모여 동물도 진화하고, 전보다 나은 존재로 성장하지. 인간의 시선으로 이들이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기 어려워. 신만 알지. 그들도 모두 경험 속에서 다음 생을 위한 씨앗을 품고 있지.”

빛이 말을 이었다.

“작은 새의 영혼이라고 해서 인간의 영혼보다 열등하지 않아. 모든 생명은 자기들의 틀 내에서 성장하고 있어. 그 법칙의 실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사랑이야.”


J는 길가에 핀 마지막 국화 한 송이를 바라보았다. 바람결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는 모습이 유난히 인상 깊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의 배움을 알 수 없을까? 왜 신만 알 수 있는 거지?”

빛은 낙엽 하나를 주워 들며 천천히 답했다. “너는 지금 이 낙엽이 무슨 꿈을 꿨는지 알 수 있니? 하지만 그 낙엽에게는 의미 있는 꿈이었을 거야. 생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해. 인간의 눈으로는 작은 새의 성장도, 나무의 고통도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도 배움과 변화가 있어. 모든 생명은 완성을 향한 여정 위에 있는 거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꽃도 생명의 완성을 위한 여정에 있는데, 왜 머리 좋다는 인간은 그 여정을 인식하지 못하지?”

“사람은 가끔 착각하지. 지금 이 순간을 정직하게 살지 않아도, 미래엔 괜찮을 거라고. 환생이 있다고 해도, 어차피 기억도 안 날 테니 괜찮다고. 그건 어리석은 에고의 속삭임이야.”

J는 고개를 떨구었다. 마치 마음속 어딘가를 들킨 듯한 기분이었다.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빛이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삶에서 나쁜 씨앗들을 하나씩 없애야 해. 불안한 마음, 숨기고 싶은 죄책감, 속임수. 인간은 법정에선 거짓말하면 처벌받지만, 자기 양심을 속이는 일은 쉽게 드러나지 않아. 그래서 인간은 자기만 알고 있는 잘못이 들통나지 않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하지. 여하튼 양심은 스스로 판단하거든. 그 법정은 곧 우주의 법이기도 해.”


J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뭇잎 하나가 그의 어깨에 떨어졌다. 그는 그 잎을 손에 올려놓고 한참 바라보았다.

“빛....... 무신론이란 것도 어쩌면 그런 도피일까?”

빛은 잔잔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잘못 살아도 벌 받지 않을 거야’라는 믿음. 한마디로 대충 살며 나쁜 짓도 하다가, 죽어도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겠다는 엄청난 에고적 탐욕이지. 그것은 인간의 한계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신이 만들어놓은 질서를 완전히 부정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에서 나온 거지. 하지만 우주의 법칙은 감정도, 관용도 없는 절대의 법이야. 사랑이라는 본질 안에서 돌아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


잠시 고요가 흘렀다. 바람의 한 줄기가 더 강하게 지나갔다. 노란 은행잎들이 소용돌이치며 날아올랐다. 빛은 말했다, “그러니, 환생은 벌이 아니라 기회야. 동물도, 인간도, 나무도 다음 생을 위한 준비를 지금 하고 있는 거지. 살아 있다는 건, 매 순간 배우고 있다는 뜻이니까.”

J는 자신의 다음 생이 궁금했다. 빛은 해가 넘어가는 석양을 보며 말한다. “환생은 미래의 일이 아니야.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미 결정되는 거지. 그러니 다음 생이 궁금하면, 지금 삶을 보면 되지. 지금의 우리 모습은 5년 전, 10년 전에 자신이 생각하고 행했던 씨앗의 결과라고 하잖아. 다음 생도 마찬가지지.”


J는 물었다.

“다음 생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지?”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소망하고, 명상하고, 남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다음 생을 위해서는 나쁜 미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요인들을 지금부터 하나씩 제거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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