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짓을 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일을 안 하는 것도 문제다.
물기 머금은 초여름의 햇살이 들판을 감싸고 있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논의 어린 벼들은 이제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참이었다. 길가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소박하게 피어 있었고, 시골길을 걷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아직은 짧았다. 매미 소리는 덜하지만, 풀벌레와 멀리서 들려오는 종달새 울음이 맑게 퍼졌다. 간간이 들려오는 트랙터 소리에 묻히듯 두 사람은 조용히 걸었다.
논두렁 사이로 걷던 J가 입을 열었다.
“빛, 요즘 자꾸 생각이 많아져. 무심코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다 어딘가에 빚처럼 쌓여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빛은 가볍게 풀잎 하나를 뜯어 돌돌 말며 말했다.
“맞아. 그게 바로 영적 채무야. 우리가 살아가며 남긴 말, 감정, 행동의 잔해들이 빚처럼 우리한테 돌아오지. 어떤 건 따뜻하고 어떤 건 차갑지. 결국 다 우리 안에 남아.”
J는 고개를 끄덕이며 길가의 좁은 수로를 내려다봤다. 햇살이 반짝이며 잔잔한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근데 그 빚, 어떻게 갚아야 할까? 그냥 후회만 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닌 것 같아.”
빛이 천천히 말했다.
“후회는 출발점일 뿐이야. 진짜 중요한 건 자기성찰이야. 매일 밤, 조용히 하루를 되돌아보는 습관. 오늘 내가 누구에게 상처를 줬는지, 어떤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는지. 그런 걸 하나씩 마주 보는 거지.”
“그게 말처럼 쉽진 않더라.”
“그렇지. 그래서 습관이 중요한 거야. 하루 5분이라도 꾸준히 하면, 마음이 맑아져. 그 맑음이 삶에 작게나마 작용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변화가 생겨. 영적 빚도 천천히 정리되기 시작하고.”
J는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작은 꽃 한 송이를 바라보다 말했다.
“그럼 결국, 나쁜 카르마를 줄이는 게 곧 성장이라는 거네?”
빛은 맞은편 풀숲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빚만 갚는다고 완성되는 건 아니야. 좋은 카르마도 많이 만들어야 균형이 맞아. 선한 행동, 따뜻한 말, 정직한 선택들. 그런 것들이 공덕이 돼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우리를 지켜주지.”
J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어린 벼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나쁜 짓을 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일을 안 하는 것도 결국 문제라는 얘기네.”
빛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부정이 스며들 여지가 많아져. 선은 기다린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아. 능동적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해. 그게 진짜 힘이야.”
두 사람은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아래 그늘에 도착했다. 나무 아래에선 작은 풀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살짝 끈적한 공기였지만, 그늘은 시원하고 편안했다.
“빛, 만약 내가 똑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면? 감정, 습관........ 그런 게 잘 안 고쳐지면?”
빛은 나무에 손을 기대며 말했다.
“그건 아직 그 카르마에서 배울 교훈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뜻이야. 반복은 더 배울 게 있다는 메시지야. 그냥 참는다고 바뀌지 않아. 그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를 이해해야 해. 거기서 통찰이 나와.”
J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말 들으니까....... 나쁜 습관을 고친다는 게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빛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응, 통찰이 있어야 의지도 지속될 수 있어. 참고 억누르는 건 오래 못 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비로소 바뀔 수 있어.”
빛이 말을 이었다.
“카르마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야, 성장이 목적이야! 삶의 고통과 반복되는 문제는 이전 삶의 실수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되풀이되는 수업이지. 두려워할 필요 없어. 마주하면 길이 생겨.”
J는 조용히 다짐하듯 말했다.
“나, 오늘부터 자기성찰 노트 써보려고. 아주 짧게라도.”
빛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좋은 시작이야. 너 안에 있는 선한 씨앗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할 거야. 매일 밤의 성찰, 일주일에 한 번 봉사, 하루 한 번의 참을성, 남을 돕는 말, 이해하려는 자세, 침묵 속의 공감......., 이런 일상의 작은 반복이 우리의 카르마를 정리하고, 새로운 길을 열지! 좋은 카르마를 위해 뭔가 대단한 선행도 좋아, 하지만 일상의 의도된 선한 주파수를 계속 내보내는 것부터가 시작이야! ”
하늘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해는 아직 높았지만, 햇살은 기울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