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카르마가 생긴다
잔잔한 호수는 거울처럼 가을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바람 한 줄기 없이 고요했다. 단풍이 거의 다 진 나뭇가지엔 드문드문 갈색 잎이 남아 있었고, 벤치 아래엔 낙엽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J는 벤치에 앉아 떨어진 잎 하나를 집어 들었다.
빛도 말없이 옆에 앉았다. 가을 햇살이 옅게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빛, 내가 요즘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게 있어. 우리가 뭔가를 하면, 그게 무조건 결과를 남긴다는 거야. 좋든 나쁘든. 그냥 지나가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거.”
빛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바로 ‘업’ 즉 카르마야. 원인과 결과. 마음으로 품은 생각, 말로 내뱉은 말, 행동으로 옮긴 모든 게 흔적을 남겨. 그리고 그 흔적은 결국 나한테 돌아오지.”
“근데 이런 생각도 들어. 만약 내가 누굴 도우려고 뭔가 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는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면? 나한테도 책임이 생기는 걸까?”
빛이 호수 위로 시선을 옮겼다. 햇빛이 반짝이며 물결처럼 흔들렸다.
“선의였더라도 결과를 책임져야지.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 행동에 대한 결과라면 그 역시 배워야 할 수업이지.”
J가 말없이 손에 든 잎을 공중으로 던졌다. 그 잎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예전에 읽은 일화가 있어. 한 장수가 있었는데, 나라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한 사람이었어. 근데 전쟁이 터지고, 자기는 싸워야만 하는데........... 부처를 찾아가 물었대. ‘전쟁에 나가면 사람을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빛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아는 이야기야. 부처가 그 장수에게 말했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그 순간, 이미 새로운 카르마를 만들어냈다고. 그 말 속엔 큰 의미가 담겨 있어. 어떤 맹세든, 어떤 신념이든, 그것을 선택한 순간 새로운 책임이 생겨. 의도는 변명이 될 수 없어. 행위는 남으니까.”
J는 한참 말이 없었다. 머리 위로 까마귀가 한 마리 날아갔다. 늦은 오후 하늘은 벌써 어스름했다.
“그럼 결국,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누군가를 위해 싸웠든 말든......... 살생은 살생이고, 그에 대한 대가는 피할 수 없는 거구나.”
“맞아. 우주의 법은 굉장히 정직해. 단순하고 냉정하지. 이유를 묻지 않아. 너한테 칼을 쥐게 한 맥락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칼을 휘둘렀는가, 그것만을 보는 거지.”
“좀 잔인하네.”
“아니. 오히려 공평한 거지. 그래서 우리가 선택할 때 더 깊이 고민해야 해. 카르마는 처벌이 아니야. 학습의 흔적이야. 마치 시험 본 답안지처럼, 다시 돌아오고, 다시 풀어야 하는 문제들이지.”
빛은 말을 이었다.
“자신의 나라를 위해, 왕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선한 카르마로 돌아오겠지. 하지만 누군가를 상처 입힌 것은 또한 그에 맞는 카르마로 돌아오는 거지. 우리 인간이 계산하기에는 각자 영혼이 그동안 펼쳐놓은 너무나 많은 카르마가 얽혀 있어 하나하나 계산하기는 어려워.”
J는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하튼 언젠가는 우리가 미뤄두었던 모든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는 거네?”
빛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개 돌려 외면했던 일, 해결하지 않은 상처, 마음속 미움이나 거짓들....... 전부 다시 만날 날이 와. 그리고 그때는 회피가 통하지 않아. 오직 직면과 성숙만이 해답이야.”
J는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결국 도망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네.”
빛이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그게 꼭 두려운 일은 아니야. 오히려 희망이지. 왜냐하면 완성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는 뜻이니까. 실패해도 괜찮아. 하지만 책임은 져야 해. 그것이 성장이고, 그것이 자유야.”
“카르마는 처벌이 아니라 배움이야. 우주적 심판이 아니라, 우리가 배워야 할 숙제를 우리에게 돌려주는 과정이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거 명심해.”
J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등을 벤치에 기대었다. 가을 햇살은 점점 길어졌고, 호수는 다시 조용히 고요했다. 언젠가 자신이 세상에 남긴 모든 발자국을 돌아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