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할 때는 일이 끝나면 후련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감각이 따라왔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달랐다. 완성했는데도 기쁘지 않다. 힘겹게 써냈음에도, 마음속 어딘가에선 늘 ‘이 정도밖에 안 되나!’라는 아쉬움이 고개를 든다.
나는 아직 스스로를 예술가라 부르기엔 초라한데도 이런데, 정말 수준 높은 예술가들은 오죽할까. 그들은 어쩌면 더 깊은 침묵 속에서, 더 침울한 고요 속에 있을 것이다. 왜 예술가들은 침울할까? 왜 예술에서는 끊임없는 부족함을 느끼는 걸까? 그리고 왜 직장에서는 오히려 '충분하다'는 만족감이 쉽게 따라오는 걸까?
직장 일은 일반적으로 감정적 몰입이 적다. 정해진 목표, 정해진 기한, 분명한 결과. 업무는 효율과 실용이 기준이 되며, 일정한 성과를 달성하면 ‘완료’라는 확정된 지점에 도달한다. 이때 따라오는 ‘이 정도면 괜찮아’라는 감각은 지나친 완벽주의를 피하는 지혜로운 타협이기도 하다.
반면 예술은 다르다. 예술은 감정이 깊이 실린 행위다. 단지 머리로만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 전체로 부딪쳐야 한다. 몰입의 강도가 높을수록, 결과가 주는 미완의 고통도 커진다. 완성했다 해도 그것이 곧 완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술에서는 외부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감각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이 내면의 기준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높아진다는 점이다. 감각은 예민해지고, 표현은 더 치열해진다. 어제는 자랑스러웠던 작품이, 오늘은 어딘가 거칠게 느껴진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 닿지 못한 아름다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진실, 그것들이 늘 창작의 바깥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예술은 늘 미완이다. 더 깊은 표현, 더 섬세한 감정, 더 탁월한 형식....... 표현의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예술의 완성은 늘 잠정적이다. 그것은 끝이 없는 탐색의 길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종종 침울하다. 침울함은 무기력이나 무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도달하지 못한 가능성에 대한 자각 때문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고, 말로 옮기지 못한 감정을 곱씹으며, 닿지 못한 빛을 향해 몸을 던진다. 예술가는 자신이 아직 표현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침울한 것이다. 하지만 그 침울함은 다음을 위한 동력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