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했던 것들은 계속 다가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불확실성이 해소된다.

by 정강민

여름 끝자락의 도시 거리, 아직 낮의 열기가 가로수 사이에 아른거리고, 도로 위 아스팔트는 미약한 뜨거움을 내뿜고 있었다.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 붉은 노을이 건물 벽에 걸려 있었다. J와 빛은 천천히 인도 위를 걸었다. 습기를 머금은 텁텁한 바람은 불었다 멈췄다 하며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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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땀을 닦으며 말한다.

“있잖아, 빛. 왜 사람은 자기 단점은 잘 안 보려고 할까? 나도 그렇지만...., 뭔가 외면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꾸 덮어두고 싶거든.”

빛은 웃으며 말한다.

“그건 마치 등에 큰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나그네 같아. 앞주머니엔 자기가 좋아하는 거, 자랑스러운 것만 넣고, 뒷주머니엔 보기 싫은 것, 잊어버리고 싶은 것,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꾸겨 넣는 거지. 근데 결국 사람을 자꾸 넘어뜨리는 건 뒷주머니야.”

J가 등의 가방을 잡아당기며 말한다.

“음..., 결국 내가 외면한 것, 내가 불편해 피했던 것들이 나를 잡아끄는 거구나.”

빛은 빌딩 너머 노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 그게 ‘카르마’야.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쌓여서 등에 짐처럼 달라붙는 거지. 그걸 줄이려면 가끔은 가방을 내려놓고 뒷주머니를 열어봐야 해. 그래야 우주가 왜 공정한지 알게 되거든. 내가 겪는 고통이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내가 뿌린 대로 거둔 결과라는 걸 깨닫게 돼.”


J가 갸우뚱하며 말을 이었다.

“근데 솔직히 그게 쉽진 않지 않아? 자기 단점을 들여다보는 건 무섭거든.”

빛이 말한다.

“쉽지 않지. 하지만 피한다고 가벼워지진 않아. 오히려 더 무거워져. 삶에서 오는 문제나 골칫거리는 결국 내 관점의 왜곡, 내 욕심, 충동, 혹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험에서 나와. 경험은 스승이야. 근데 그 안에서 교훈을 못 찾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J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결국 경험은 과제네. 시험지 같은 거. 근데 풀 줄을 몰라서 그냥 방치하면, 같은 문제가 다시 또 나오고.”

“그렇지. 결국 삶은 문제를 풀 때만 성장시켜 줘. 도망치면 성장도 없어.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는 말도 있잖아. 위기가 오면 오히려 분명해져. 내가 뭘 바꿔야 할지, 어디서 잘못됐는지. 그 순간이 성장의 기회인 거야.”


J는 뭔가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동안 내가 풀지 못한 것들이고, 이것들은 날 괴롭히려고 오는 게 아니라, 날 끌어올리려고 오는 거네.

빛이 확신에 찬 목소리를 답한다.

“바로 그거야. 근데 대부분은 남 탓하면서 불평하다가 기회를 놓쳐. 세상이 자신을 걷어찼을 때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 그게 과제야. 원칙에 따라 반응하면 마음이 지켜지고, 원망하면 오히려 더 엉망이 돼.”

빛은 말을 이었다.

“삶에서 위기가 터질 때마다 혹시 나의 잘못된 관점과 가치관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닌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빛이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인류라는 집단이 비슷한 수준의 체험을 하는 수많은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해.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비슷한 경험을 해. 자연은 인간이 자기에게 필요한 경험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시간, 장소,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어. 따라서 자신이 현재 상황에 처해 있는 이유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지난 행동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지. 그동안 투자한 노력에 비해 정당한 보상을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애초에 정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어.

J가 급한 듯 질문했다.

“그런데 우리를 매일 괴롭히는 문제와 골칫거리는 어떻게 생겨나는 거야?”

빛이 잠시 생각한 후에 답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생겨나는 거야. 이것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근시안적인 생각, 제대로 된 가치를 판단하는 분별력의 상실과 무관심, 자기 규율의 부족, 자기 욕심만 채우고 뭐든지 충동적으로 저지르려는 동물적 본능, 그리고 삶이 제공하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 하나도 없이 매번 새로운 자극을 쫓아 헤매는 가벼운 성향에서 생겨나는 거지.”

J는 체념하듯 말했다. “내가 해 왔던 행동들이네.”

빛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우리 모두가 그래. 이게 인간적 모습이니까. 그러면서 조금씩 배워나가는 거지.”


J가 결심한 듯 말했다.

“장기적 관점, 분별력 회복, 자기 규율의 정립, 이타심 발휘, 모든 경험에서 배우겠다는 진중함을 행동으로 옮겨야겠다!”

J는 말을 이었다. “내 등에 진 짐은 내가 만든 거고, 그걸 내려놓고 정리할 수 있는 것도 나밖에 없구나.”

“그래. 중요한 건, 그 짐이 너를 짓누르려고 있는 게 아니라 너를 성장시킬 자산이라는 거야. 잘 정리하면 그것들이 결국 너의 힘이 돼. 늦여름 해가 지듯이, 무겁게 달라붙던 그것도 결국 사라지지. 남는 건 네가 얻은 통찰뿐이지. 그것은 네 영혼의 씨앗으로 간직되는 거야.”


도시는 서서히 밤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노을빛은 점점 옅어져 건물 뒤로 사라지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J는 등에 메고 있던 작은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빛의 말을 오래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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