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 대로 거둔다는 건 자연의 법칙
매미 소리가 한창이지만, 한낮의 열기는 예전보다 살짝 누그러진 듯했다. 논길 옆으로는 하얗게 피어난 들국화가 바람에 살짝 기울고 있었고, 멀리 산 위에 얹힌 구름은 천천히 색을 바꿔가고 있었다. J와 빛은 마을 입구의 오래된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있었다. 땀에 젖은 셔츠가 바람에 말라가며 J가 말했다.
“빛,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든 걸까? 억울할 때도 많고, 이유도 모르겠는 일들이 계속 생기잖아.”
빛은 나무 그늘 위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나 그래. 하지만 기억해야 해. 뿌린 대로 거둔다는 건 자연의 법칙이라는 걸.”
“불교에서도 그런 말 하잖아.” J가 고개를 끄덕였다. “‘뿌린 대로 거둔다.’ 기독교도, 힌두교도 비슷하게 말하고.”
“맞아.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게 없지. 그리고 남을 윤택하게 하면 나도 윤택해진다고 유대교는 말해. 이건 단순한 종교적 도덕을 넘어선 우주의 원리야. 올바른 철학의 배후에는 우주는 공정하다는 기본적인 명제가 항상 깔려 있어, 하지만 이 진리를 내면에서 체험하지 못하고, 우주가 정직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를 주변에서 관찰하지 못하면 심적으로 괴로운 상태에 빠질 수 있어, 보통 억울해하고 답답해하지.”
J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근데 그걸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잘 안 믿겨.”
빛은 가만히 웃었다.
“맞아. 근거 없는 믿음은 오래 못 가. 우주가 정직하게 작동하는 걸 직접 체험하고 관찰해야 해. 자기 신념이 옳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정신적으로 괴롭고 삶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삶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해야 해. 자기가 뿌린 걸 잊어버린 채 왜 이런 일이 생겼냐고 묻는 사람이 많거든.”
평상 너머로 논두렁 사이 바람이 불어 들판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J는 손으로 땀을 닦으며 물었다.
“빛, 개성이라는 건 뭐야? 나만의 신념과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한 거야? 남과 달라야 특별한 거야?”
빛이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들며 말했다.
“서양은 인간의 개성을 크게 강조하지. 근데 동양은 좀 다르게 봐. 개성은 우리가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과제의 흔적일 수도 있어. 개성이 강하다는 건 다른 생명과 공통분모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해. 개성이 강할수록 갈등도 많아지고, 자기주장만 고집하게 되니까 관계가 멀어지기 쉽지.”
“그러면 개성이 강한 게 나쁜 거야?” J가 물었다.
“아니, 나쁘다고 할 순 없어. 그건 ‘성장의 과정’ 일뿐이야. 우린 새로 태어날 때마다 자신만의 다양한 개성을 마음껏 뽐내며 지구라는 별을 다채롭게 꾸미는 거지.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게 이런 다양성이지. 물론 사랑이라는 기준안에서 말이야.”
빛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여러 생을 두루 체험하면서 개성이라는 독특한 옷을 걸치고 현재 순간에 이른 존재들이지. 자신의 모든 생각과 신념, 소망과 두려움과 행동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지. 자신의 개성에 카르마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어.”
J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는 지금 몇 학년쯤 될까?”
빛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건 너만 알 수 있지. 근데 하나는 확실해. 통찰력이 깊어질수록 책임도 커진다는 거. 학년이 높을수록 겸손해지는 게 정상이지. 반대로 우월감을 느낀다면 아직 그 단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거야.”
J는 한숨을 내쉬며 들판을 바라보았다. 한쪽 논두렁에서 아이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나는 내가 뿌린 대로 살고 있는 거네. 지금의 나는 과거가 만든 결과고.”
빛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오늘의 너는 미래의 너를 만든다. 5년 전의 행동이 지금의 너라면, 오늘 네가 하는 행동이 5년 뒤의 너를 만드는 거지. 갑자기 바뀌는 사람은 없어. 성장엔 과정이 필요해. 고통 없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방법도 없고.”
J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럼 저학년의 영혼은 뭐야?”
“인생 학교에서는 새 학년으로 승급할 때마다 자기를 다스리는 능력이 한 단계씩 상승한다고 볼 수 있어. 가장 저학년은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지. 자기 욕망, 감정, 본능에 휘둘리고 결과는 생각하지 않아. 그럼 대가가 쌓이고 짐이 무거워져서 삶이 힘들어지거든. 반대로 성숙해질수록 더 큰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고. 주변 사람이 자신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주변에 하게 되지. 자신을 사랑하듯이 주변을 사랑하지.”
바람이 불어 평상 위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렸다. J는 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미래를 만든다....... 그러면 나는 지금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 걸까?”
빛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 질문을 매일 스스로에게 던져봐. 그러면 답은 저절로 보일 거야. 씨앗을 보고 싶다면, 5년 전의 자신을 떠올려. 그리고 미래를 보고 싶다면, 오늘의 너를 돌아보면 돼.”
J는 고개를 끄덕이며 평상에서 일어섰다. 열기는 여전했지만, 땀에 젖은 공기 속에서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