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나는 다릅니다.

by 정강민

날이 새면 너 자신에게 말하라.


오늘 나는 주제넘은 사람을,

배은망덕한 사람을,

교만한 사람을,

음융한 사람을,

시기심 많은 사람을,

붙임성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라고.....


그들이 이 모든 결점을 갖게 된 것은 선과 악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에게 해를 입힐 수 없다. 나 또한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할 수 없다. 그들이 아무리 내게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이성과 신성을 나누어가졌기 때문이다. 피가 같고, 출신이 같기 때문이 아니다.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내용입니다.

그 당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황제지만, 스스로 경계하고, 올바른 길을 가고자 한 황제 개인의 치열한 고뇌가 보입니다. 당시 황제라면 교만하거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든 처리가능했을 텐데도........, 인간적 고민을 합니다. 또 이렇게 하루를 기록합니다. 근데 그 기록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입니다. 재미있는 건 아우렐리우스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노예 철학자 에픽테토스였습니다. 일반적이면 신분 때문이라도 노예의 책을 언급하지 않을 것 같은데........, 여하튼 명상록에는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을 여러번 언급합니다. 여하튼 대단한 황제입니다.


또 우리 모두에게 신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건 제가 요즘에 파고들고 있는 내용입니다. 자신에게 파고 들수록 신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깊숙이 관찰하고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거부하지 않고 승인하고 행동하면 우리는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깊은 마음은 모두 선이기 때문입니다.



몇 달전에 썼던 글입니다. 지금 이 글을 다시 쓰려고 하면 못 쓸 것 같습니다. 글은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기분과 영감이 조화되어 튀어나온 문자화 된 감정입니다. 몇 달 뒤에 보면 전혀 자신이 쓴 글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찰나적 감성이 발휘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글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정답입니다. 찰나적 기분을 기록했다면 지금의 자신과 일치하지 않을 겁니다.



우린 글과 자신을 너무 동일시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지 못하고, 또 쓴 글을 카페에 올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글은 당시의 순간적 기분의 표현이다. 지금 나의 감정은 또 변했다. 나와 글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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