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대하는 자세...
(맥주집)
토요일 저녁 대구역 근처 화려한 동성로. 시끌벅적한 맥주집.
제대 1주일 남겨둔 고참 한명과 나와 동기들 8명이 술을 마셨다. 제대축하 파티였다. 고참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휴학했고, 아나운서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말도 잘했고, 성격도 유쾌했다. 우린 맥주집에서 11시쯤 부대로 조용히 복귀했다.
(전화)
아침부터 전화가 울린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나가지 않았다고.......,”
(가로수)
도로 옆 가로수에는 경찰 오토바이 파편 몇 조각이 여전히 흩어져 있었다.
(내부반)
전투경찰 내부반은 2층 침대구조다.
동기인 민수는 침대 2층에서 엎드려 토익책을 보고 있다. 가끔 한숨 소리가 들렸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히 책을 보고 있다.
“민영아, 책이 눈에 들어오니?”
“그럼 뭐 할꺼야? 그냥 멍하니 있는 게 더 힘들어! 그냥 보고 있는 거야!”
(벽을 보고 가부좌)
모두가 벽을 보고 양반자세로 앉아 있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우리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줄지어 걸어가면서 앉아 있는 그들의 뒷모습을 본다. ‘절대 죄를 지으면 안 되겠다. 탈영하면 안 되겠구나!’ 훈련소 때 조교들이 영창을 구경시켜준다. 아마 우리들이 죄를 지으면 저렇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 그랬을 것이다.
제대 1주일 남겨둔 고참이 죽었다.
우리와 대구역 근처에서 맥주를 한 그날 새벽에 일이 발생했다. 또 국가대표 사격 상비군 소속이었던 내 동기는 왼쪽 눈부터 입, 왼팔, 왼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반신불구가 되었다. 그날 밤 11시에 들어와 우린 잠을 잤는데, 둘은 경찰오토바이를 타고 새벽까지 거리를 달렸던 것이다. 그러다 가로수를 들이 박았다.
다음날 죽은 고참의 어머니님 서울에서 내려왔다.
‘군복 입은 너희들을 보니 우리 아들 같다!’며 우리를 붙잡고 펑펑 운다. 우리도 울었다.
그날 밤 대구역 맥주집에 같이 간 나와 내 동기들에게는 법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모든 업무는 정지되었고, 내부반에서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잠을 잘 수 없었다. 후임들이 먹을 것을 사오기도 했다. ‘정수경님 그래도 좀 드세요!’
사고가 있던 날 후임들도 같이 나가 술을 마셨다. 하지만 우린 우리 동기들까지만 부대를 이탈했다고 말을 맞추었기에 후임들은 미안함과 긴장감이 있었을 것이다.
우연히 ‘초록색’을 검색하다가 <그린마일>이라는 영화제목을 발견했다.
그린마일(green mile)은 “사형수가 최후로 걸어가게 되는 교도소 내의 녹색의 복도”를 일컫는 말이다. 죽음의 마지막 길목이라는 의미다. 친절한 교도관과 누명을 쓴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다.
사형집행 날, 친절한 교도관은 누명 쓴 사형수에게 질문한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왜 기적을 죽였냐고? 물으면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사형수는 교도관에 말한다. “친절을 베풀었다. 라고 답하세요." 그동안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친절과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형집행 전 사형수의 마지막 심정을 말한다. “죽기 전에 고기에 으깬 감자국과 옥수수 빵 그리고 영화 한편이면 좋은 것 같아요.”
우린 누구나 그린마일을 걷게 된다. 병이든, 사고든, 긴 그린마일이든, 아주 짧은 그린마일이든..........,
당시 제대 3개월을 남겨둔 상황, 그 1주일은 그린마일이었다. 정말 미치게 힘들었다. 온갖 상상이 몰려왔다. 내가 영창에 앉아 있는 모습, 사회에 나갔을 때 불이익을 받을 거라는 생각 등........, 죽음은 아니었지만 난 정신적으로 죽었다.
내부반 2층 침대에서 토익책에 펼쳐놓고 있던 군대동기 녀석의 차분함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고, 안절부절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녀석을 보면서 순간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냥 힘들었다.
죽음을 선고받고 그린마일을 걷는다면
차분할지, 24살 정강민 수경(병장)처럼 안절부절 할지 모르겠다. 대의를 위한 죽음이라면 좀 나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