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울은 타협하지 않았다는 의미.....
요즘 원고작업으로 좀 바쁩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원고작업을 하면서 늘 기분이 별로라 왜 그런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원고작업은 왜 유쾌하지 않을까요?
조각가들은 바위덩어리에서 멋진 조각품을 탄생시킵니다. 망치로 수년 동안 수만 번을 쪼아서 돌덩어리를 예술로 바꿉니다. 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페이지에 많은 자료가 생겼다가 그 자료가 추려지면서 그럴듯한 형태가 되는 것을 봅니다. 돌덩이가 조각품으로 변하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물론 제가 하는 작업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조각가의 작업 과정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과 비슷한 기분을 제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입니다.
하지만,
작업 중간 중간 쉴 때, 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늘 기분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예전 공부를 할 때는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공부하면 뿌듯하기도 했었는데......... 요즘 원고작업은 늘 침울합니다. ‘왜 이렇지? 왜 이렇게 침울하지?’ 이 질문을 며칠 사유했습니다. 답을 찾았습니다.
예전 작가라 하면 얼굴이 하얗고 비실비실한 느낌으로 그려졌습니다. 아마 햇빛 없는 방에서 책만 읽고 글만 썼기 때문일 겁니다. 당연히 희희낙락하며 웃는 얼굴은 아니었을 겁니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늘 침울합니다. 이유는 어제보다 더 나은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더 주어지면, 자료가 더 있으면, 결국 자신의 에너지가 있는 한 더 나아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들 스스로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결과물의 허점이 보입니다. 보이니 고치고 싶습니다. 수정하기 위해서는 자료를 더 찾고 더 읽어야 합니다. 그럼 분명 더 좋아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데 현실은 보통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침울합니다. 작가의 숙명입니다.
‘그럼 예술가들은 영원히 침울할 수밖에 없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예술가는 너무나 불행한 직업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침울함을 기뻐해야 합니다. 침울함은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고, 결국 그 침울함으로 인해 당신은 더 나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완성 과정 중에 침울하지 않다는 것은 더 이상 나아지고픈 욕망이 없거나 그만 마무리 하자고 자신과 타협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괴테의 이야기도 생각이 나네요.
그렇다고 영원히 ‘침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기쁜 순간도 있습니다. 조금 짧아서 그렇지. 결과물이 완성되어 대중에게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더 이상 손볼 수 없기에 홀가분합니다. 그 찰나적 순간에는 환희도 있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우리가 지금 침울한 건 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침울함을 기쁘게 받아들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