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내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주 다니는 도서관은 산 입구에 있다. 늘 등산객이 있다. 점심을 먹으러 자주 가는 작은 김밥집이 있다. 할머니와 따님인지 며느리인지 모르겠지만 두 분이 운영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난 식당에 가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는 마스크를 벗어야 해서 부담이었다. 도시락을 가져오기 전에는 거의 매일 김밥을 사서 차안에서 먹었다. 할머니가 어제는 갑자기 묻는다.
“매일 그렇게 산을 가슈?”
“음~~네” 라고 답했다. 도서관을 다닌다는 말을 하면 또 다른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페이스북에 불교와 부처에 대해 잔뜩 써 놓고, 또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도 소환하고........ 어떤 분의 긴 글을 읽었다. 글 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다 부처이므로 완전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 는 말이 있어 댓글을 하나를 이렇게 달았다.
‘완전한 자유가 가능할까요? 부처님도 배가 고팠을 것인데......, 이런 건 인간의 기본적 욕망입니다. 욕망이 있다는 건 집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럼 완전한 자유와 거리가 좀 멀지 않나요?^^’
조금 있으니 내 댓글에 그가 답글을 달았다. '불교는 극단적 허무주의입니다. 법구경을 읽어보시면 부처님은 시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라는 단어가 해탈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된 것 같습니다. Freedom은 아니고요^^'
그의 댓글을 보며 ‘00님께서 생각하는 ‘해탈’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라고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혹시 기분 나쁠까봐, 괜히 시비 거는 사람으로 여길까봐, 그냥 그의 답글에 ‘좋아요’표시만 했다.
근데 조금 있으니 친구 삭제를 하고 있다. 솔직히 누군가 친구삭제를 하면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근데 이런 철학 문구 열심히 적어놓고, 뭔가 깨달은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댓글 하나에 친구삭제다. 정치적 의견도 아니고, 지적인 것에 아주 작은 반론인데.........,
이런 사람이 인문학 강좌도 하고, 논술강의도 하고, 역학으로 돈도 벌고 있었다.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허약한 인간 참 많다.
우린 이렇게 허약하다. 엄청난 것처럼 행동해도 바짝 마른 낙엽처럼 부서지기 쉬운 100년도 살지 못하는 허약한 존재들이다. 김밥 할머니처럼 나도 그냥 질문해, 그래서 그가 친구삭제를 했다면, 아마 나는 ‘내가 너무 무례한 질문을 해서 그렇게 했겠구나!’ 하며 그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허약하다. 상대의 감정을 너무 배려하다보면 그에 대한 원망이 깊어질 때가 많다. ‘내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했는데......’
공격적으로 내뱉고 책임을 적극적으로 떠안는 자세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