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친 사람의 소리가 조금 더 부드럽다.
기타는 인생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기타에 매료되어 고교시절 락밴드를 결성하여 기타를 쳤습니다. 솔직히 음악적 재능은 별로였습니다. 이걸 만회하기 위해 나름 연습을 열심히 했습니다. 왼쪽 손가락 힘을 기르기 위해 노란 고무줄을 칭칭 감고 몇 시간을 치고 나면 손가락이 얼얼했습니다. 공부보다 기타에 매달렸습니다. 공부보다 음악하는 삶이 더 멋지게 보였습니다.
당시 구로구 가리봉 5거리에 있었던 음악학원을 학교보다 더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곳은 그 당시에도 허름했습니다. 밴드하는 사람들의 아지트였습니다. 저는 그들을 형이라 부르며 쫓아다녔습니다. 머리를 치렁치렁 어깨까지 기르고, 신발은 종아리까지 오는 부츠, 징이 박힌 가죽잠바, 큰 가디건 하나를 걸치고,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다녔습니다. 음악하는 형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인생에서 도착해야 곳에 이미 도착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17살인 저에게 너무나 큰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20살, 21살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나이입니다. 여하튼 그때 그들과 같이 다니면 치렁치렁한 머리길이와 요란한 패션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전 그런 시선들을 즐겼습니다. 전자기타, 드럼, 키보드, 보컬 등 모두 스타가 되기를 꿈꾸었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연주 실력이 월등했던 형들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학교를 가지 않고 음악학원으로 가서 고무줄을 끼고 애드립을 연습하고 있는데, 그 당시 그 지역에서는 정말 기타를 잘 친다고 소문난 형이 오셨습니다.
“너 학교 안다녀?”
“아뇨, 그냥 오늘 안 갔습니다.”
저의 연습하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한 마디 합니다. “10000번 친 사람과 10001번 친 사람은 차이가 난다. 만 번이나 만 한번이나 뭐가 차이가 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20살 21살 밖에 되지 않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어린 사람이 ‘깊이’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겁니다. 저는 당시 그 말이 좋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음악적 재능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연습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기타가 너무 좋아 하루 종일 쳐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첼로 연주자였던 파블로 카살스(1876-1973)는 나이 90세까지 매일 5시간씩 첼로를 연습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자주 물었다고 합니다. “아니 나이도 많고 이미 대가로 인정받는데 왜 이렇게 연습을 혹독하게 하십니까?”
“연습하는 만큼 늘어요.”
한 번하면 한 번한만큼 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맛을 제대로 알면 멈출 수 없습니다. 대가들이 마지막까지 수련을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