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는 독자가
좋은 홍차 구했다며 보내 주어
고맙다고 전화했더니
시골에서 혼자 지내면서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라 한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 섞여
야생 부용 꼬투리 바람에 서걱이는데
마음도 같은 소리 내는데
어떤 새들은 떠나고
어떤 새들은 돌아오는
가을 저녁, 오랜만에 연락 온 편집자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며
말을 잇지 못한다
급성 폐렴으로 며칠 만에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눈을 감으셨단다
눈물은 가슴이 말할 수 없는 말이라는데
신의 발성법 같은
가을바람 속
나는 떠날 것이고
당신도 떠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공통점이다
그 밖의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살아남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소멸로부터 살아남기가 아니라
봄까지 슬픔으로부터 살아남기에 대해
소멸이 아닌 슬픔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과제일 것 같다.
소멸은 운명이고, 슬픔에서 살아남는 것은 의지로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