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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Jul 30. 2020

감각을 평가하지 마세요

- 타기팅과 트렌드 헌팅에 신경 쓰세요

꼭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어도 어느 회사든 광고 브로슈어 등을 만들 때 디자인 시안이나 광고 카피에 대한 평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선택을 위해서, 라는 명목 하에 품평회가 시작되는데, 그게 종종 디자인이나 카피에 대한 품평에서 더 나아가 개개인의 감각을 평가하는 자리가 되곤 합니다. 요즘은 가급적 그런 자리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좋은 것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예전에 실수를 꽤 했었거든요. 제가 생각한 디자인이나 카피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쪽을 선택하는 분들의 감각을 평가했지요. 너무 이론적이다, 시장을 모른다, 올드하다, 이런 표현으로요. 그럴 수 있었던 건 예전 회사의 대표님이 제가 선택한 시안들을 좋아했기 때문일 겁니다. 코드가 맞았다고 할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걸 저는 제가 감각이 좋다고 생각했던 거죠.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디자인이나 카피 모두 최종 결재권자의 영역이니, 저로서는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결과를 제안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는 대표의 몫이지요. 저는 한 회사의 디자인 감각이나 카피 감각은 특정한 방법론적 조치가 없다면 그 회사의 대표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고 보거든요. 적어도 요구르트에 화장실을 연상케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 대표가 없다면 '쾌변 요구르트'라는 이름이 시장에 나올 일을 만무할 겁니다. 조너선 아이브의 기가 막힌 애플 제품 디자인 역시 엔지니어들에게 디자인에 기능을 맞추라고 지시하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일 테고요. 이건 사실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만 합니다. 회사는 CEO라는 지휘자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이니까요. 결국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은 대표의 몫이지요. 


그러나 정밀한 제품 사용자 층에 대한 조사와 현재 소비자의 심성을 가늠케 하는 트렌드 헌팅 없이, 대표의 감각에 자신의 판단의 기준을 맞추는 건 위험한 일일 겁니다. 예전에 서점에서 아주 유명한 일본 소설가의 책을 집어 들었다가 한 몇 십년 전 스타일의 올드해 보이는 표지 디자인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동료 편집자들에게 전해 들으니, 그 회사의 대표가 강력히 주장한 디자인이라고 하더군요.  


또한 정말 치밀하게 제품의 디자인을 향상시키기 위해 체계적으로 노력한 경우에도 디자인이나 카피의 성공에는 상당 부분 운이 개입합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밈들은 이 시대 제품이나 서비스들이 얼마나 소비자들의 유희성에 좌우되는지 알게 합니다. 정말 실력 있는 디자이너나 카피라이터들은 그 운에 선택당하기 위해 대상의 특성과 시대의 흐름을 잘 고려해서 엇비슷한 지역에 일종의 '찌'를 흔드는 사람들이지요. 물고기가 그것을 물 것인지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창피스런 경험을 통해 디자인 감각이나 카피 센스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문적인 디자이너나 카피라이터 말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디자인 감각이나 카피 센스로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건 상당부분 그 사람이 나와 비슷하다,라는 말에 다름 아니니까요. 또 '그때 내가 그걸로 결정해서 대박 났잖아.' 이렇게 자랑할 이유도 없습니다.(저도 간혹 그랬던 적이 있네요. 반성합니다.) 그 이면에는 수많은 폭망한 결정들이 있을테니까요. 어느 광고인이 알려줬습니다. 성공한 광고는 주인이 무척 많은데 실패한 광고는 주인이 없다고요. 


그 대신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소비자를 명확히 하고 그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끊임없이 주목하는 것, 

저는 그게 길러야할 디자인 감각이자 카피 센스라고 생각합니다. 


또 조금 무딘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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