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대충'이나 '성의 없게'가 아니다!
“매사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너무 엄격하게 하면 계속할 수 없으니까.”
- 하라 겐야. 무인양품 디자인 총감독
우리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적당히' 해서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모두가 필사적으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적당히' 해서 무엇을 이루겠냐는 것이지요. 더 맹렬하게 살 것을 주문받고는 했습니다.
학창 시절, 특히 고등학교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삼당사락'입니다. 세 시간 자면 원하는 대학에 붙을 수 있지만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더군요.
‘미쳐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남들 하는 것처럼 할 것 다하고 먹을 것 다 먹고 볼 것 다 보고 그래 가지고 세끼 밥은 얻어먹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먹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흠뻑 빠져보라고 하더군요.
경험상 맞는 말입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은 학력고사 시절이었기 때문에 한 글자라도 머릿속에 더 욱여넣는 것이 필요하긴 했습니다. 또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남보다 몇 갑절 이상 일하고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맞겠지요.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젊을 때, 일정한 기간 동안만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고3 수험생처럼 살 수는 없지요. 매일매일 3시간만 자고 평생을 살 수 있나요? 사회에 들어서기 전이거나 갓 들어선 이들이 빠르게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쌓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그렇게 살 수 있을 뿐입니다.
또한 삼당사락이건 미쳐야 잘 산다건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했을 때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의 상사나 사장님이 ‘미친 듯이 해야 성공할 수 있다'라고 질책하고 독려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직원들이 미친 듯 일할 수 있게 ‘넛지'해야 합니다.
저는 우연히 무인양품의 디자인을 만들어낸 하라 겐야 씨의 인터뷰를 읽다가 그래서 저 문구에 눈이 고정되었던 것입니다. 엄청난 디자인계의 거물이 저렇게 말한 거예요. 매사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하려는 노력을 한다고요. 너무 엄격하면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껏 제가 ‘적당히' 하려 한다고 하면 그걸 대부분 ‘대충' 일한다거나 ‘성의 없게' 일한다고 받아들이면서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아닙니다.
제게 ‘적당히'는 ‘지속 가능을 위한 열심'입니다. ‘두뇌 활동의 최적화를 위한 생활습관’이기도 하고요. ‘행복을 위한 여가'이기도 합니다. '시장의 니즈를 알기 위한 리서치'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업무 능률 향상을 위한 재충전'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게 '적당히'는 성공을 위한 과속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안전속도 유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