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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Jan 08. 2023

제각각의 시대

- 세상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존재한다!

예전에, 그러니까 제가 대학원을 다닐 무렵에, 저는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에 끼기 위해 일부러 드라마를 찾아보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 공중파의 드라마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걸 안 보면 대화에 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일인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왕따가 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통일된 하나의 이야깃거리 자체가 마련되지 않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은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화젯거리입니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무척 많기 때문에 공토의 관심사는 될 수 없습니다. 


패션도 많이 달라졌지요. 여전히 패션 트렌드는 존재하지만 예전처럼 막강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입는 옷들도 많이 자유로워졌고요. 아저씨들의 복장도 예전처럼 '양복에 넥타이'가 아닙니다. 아나운서나 금융계에 있는 친구들은 그나마 양복 차림이지만, 개발자나 연구원 등 업무가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일 쪽인 경우에는 아주 캐주얼한 복장으로 출근합니다. 


출판 시장에서 이제는 예전처럼 수백만 권이 팔리는 책은 드뭅니다. 아주 많이 팔리면 20만 권 정도라고 하지요. 저마다의 관심이 엄청나게 분화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웹 소설을 읽는 사람들에게 가서 웹 소설을 순수 문학 영역의 소설에 비해 저급하다고 비판했다가는 ‘오지게’ 욕을 먹을 것입니다. 그 잘난 소설, 너 혼자 읽으면 되지 왜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간섭이냐고요.


예전에 어느 여자 작가랑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는데요, 말끝마다 ‘이 소설 읽어봤어요? 어머, 출판사의 편집장이 이런 소설도 안 읽어요? 무. 식. 하. 게.’ 이렇게 말해서 무척 난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소설책을 출간하는 일을 하지 않았거든요. 대체로 경영서와 자기 계발서, 인문서 등을 다뤘는데,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고전으로 간주되는 소설도 아닌, 순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화제가 될 만한 외국 작품에 대해 읽었냐고 물어보니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질문하면서 자신이 무척 '교양 있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교양이 정말 없는 작가였지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제로였으니까요. (출판을 그만두니 그런 작가들의 기분을 맞춰주지 않아도 되어서 참 좋습니다.) 


예전 어른들은 게임하는 아이에게 ‘그깟’ 게임을 뭐하러 하냐고 했지만, 지금은 ‘그깟’ 게임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프로 게이머가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부산한 아이가 있다고 해도 저게 사람 구실이나 할까, 혀를 찰 일이 아니지요. ‘방가네’나 ‘덕자’ 같은 유튜버들은 아주 독특한 개성을 무기로 수십, 수백만의 구독자를 모으고 있으니까요. 그로 인해 어지간한 회사의 임원 연봉 몇 배의 수익을 거두고 있고요. 


혹자는 예전이 좋았다고 투덜거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류의 시선으로 볼 때, 취향의 차원에서 제 취향은 언제나 한심하거나 구린 축에 속했는데요. 그런 제 입장에서는 이제 얼마든지 제 취향을 자유롭게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나이가 조금 많다고, 직위가 조금 높다고, 너는 이래야 해, 하고 간섭해 올 사람이 줄어들어 너무 좋습니다. 간혹 세상 변한 것 모르고 엄숙한 표정으로 ‘니가 애냐? 만화 영화나 보고 있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웃으면서 한 마디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쪽이 상관할 일 아니고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나 가서 즐기세요.’


이렇게 말이지요. 생각만 해도 통쾌합니다. 이제 이름하여 '제각각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취미와 콘텐츠와 지식을 향유하며 그것을 발전시켜 세상에 기여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너의 취향은 후졌다고 건방지게 이야기할 수 없는, 

그 제각각의 시대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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