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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Dec 01. 2022

쌓아간다는 것

- 누구에게나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해 여름쯤, 예전에 함께 일했던 후배 편집자가 갑자기 전화를 해 왔습니다.


써놓은 원고 있죠?


그 친구가 출판사를 옮긴 지 얼마 안 된 터라 출간용 원고가 필요했던 모양이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끄적거려 놓았던 에듀테인먼트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가만있어봐. 함 찾아볼게.


다행히 그 에듀테인먼트 소설은 제가 썼던 원고를 모아 놓는 클라우드 서버에 얌전히 잠자고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갈무리해서 보내주었는데, 검토해보고는 곧바로 계약하자고 하더군요. 잘하면 시리즈물로 출간할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우아, 뭔가 횡재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딱히 당장 출간할 거라 생각하고 작성한 것은 아니었는데, 시리즈물로 출간한다니요. 후배의 귀띔으로는 회사 사장님이 매우 기대하는 원고라고 합니다.(물론 원고의 정리를 빨리 끝내라는 재촉성 아부임을 잘 압니다. 저도 편집자 출신이니 그 정도 감은 잡지요. 그래도 후배의 예쁜 거짓말이 기분 좋더군요. 역시 인간은 칭찬의 동물인가 봅니다.)


주말에 정리해서 보내주고 나니 다시 톡이 왔습니다.


또 없어요?


후배가 그렇게 물었을 때 문득 시간이 있을 때 머릿속에 구상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좀 써둘 걸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습니다. 회사일이 바빠서 더 이상은 시간을 낼 수 없었거든요.


미안, 구상해 놓은 것은 꽤 있는데 쓸 시간이 없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고 계약한 책은 올해 꽤 오랫동안 산고를 겪고 나서 1권이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내년쯤 2권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책이 많이 안 팔려서 제목을 밝히기는 좀 그러네요.


어쨌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무언가를 쌓아가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축적. 무엇이든 축적이 필요합니다. 아직 제대로 된 형태가 갖춰지지 않은 것이라도 조금씩 쌓아가서 양이 차게 되면 어느새 질적으로 비약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니까요. 나뭇가지 하나는 부러뜨리기 쉽지만 그걸 뭉쳐놓으면 무척 단단하듯, 조금 어설퍼도 여러 콘텐츠가 뭉쳐있으면 힘이 생기더군요. 뭉쳐진 것들은 상품화할 수 있거든요. 기회가 될 수 있지요.


요즘은 디지털 환경이 좋아져서 무명 가수가 뜨게 되면 그의 다른 노래들도 다 유튜브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하지만 우연히 구글의 알고리즘 덕에 하나의 영상이 떴는데 다른 영상이 하나도 없다면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겠지요. 그런 알고리즘의 기적이 일어나려면 평소에 꾸준히 콘텐츠를 축적해야겠지요.


예전에 개그맨 박명수 씨가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해서 저도 깔깔거리며 잠시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더 오랜 세월 우리에게 회자되었던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작금의 디지털 시대에는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누구에게나 축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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