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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Nov 30. 2022

삶에 대한 우주적 은유

- 김초엽 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야기 말고 소설이요. 이야기가 소설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는데, 그냥 제 나름의 기준입니다. 이야기와 소설 사이에 어떠한 가치의 차이도 두지 않습니다. 그저 제게 친숙한 주인공과 친숙한 사건, 친숙한 전개 방식을 가졌다면 이야기입니다. 재미를 줍니다. 다음 내용이 자꾸 궁금해지고요. 제가 좋아하는 ‘웹소설’이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반면 제게 낯선 감각과,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마음의 울림을 준다면 소설입니다. 읽다가 ‘뭐지? 이런 감정은?’ 하는 게 소설이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냥 제 나름의 분류일 뿐입니다.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단편집에 실린 동명의 단편 소설입니다. 그 단편집에 실린 작품 모두가 소설입니다. 읽으면서 계속 ‘뭐지? 이 감정은?’ 했으니까요.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먼 미래, 우주 정거장에 한 노인이 머뭅니다. 그 우주 정거장은 이제 더 이상 우주선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고 곧 폐쇄되어야 합니다. 노인을 지구로 소개시켜야 합니다. 그 목적으로 파견된 직원이 노인의 회고를 듣게 됩니다.


노인은 과학자였습니다. 아주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행성 사이를 오갈 수 있게 인체를 냉동하는 핵심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였지요. 노인은 사랑하는 남편을 우주 식민지에 먼저 보내 놓고 자신은 연구 발표가 끝나는 대로 따라가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조금 더 지구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행성 간에 웜홀을 통과해 이동하는 방법이 보편화되면서 남편이 가있는 우주 식민지로 향하는 우주선 항로는 폐쇄됩니다. 이전의 우주 식민지들로 가는 항로는 상대적으로 너무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렸거든요. 노인은 자신의 마지막 발표가 있던 날, 그로 인해 남편이 있는 우주 식민지로 가는 마지막 우주선을 놓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혹시 있을지 모를 우주선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품은 삶에 대한 ‘우주적’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우주여행을 하게 된 시절에도 삶에는 ‘어쩔 수 없음’이 있다는 것.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삶의 대차대조표는 우주적 삶에도 적용된다는 것. 삶의 마지막 무렵에 만나게 되는 회한 역시 과학 기술이 놀랍게 발전한 먼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는 먹먹함… 이 소설은 SF라는 형식을 빌어와 변치 않는 삶의 본질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틈틈이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마음의 울림을 일으키더군요. 


간만에 읽은 ‘소설’이 좋아 끄적였습니다. 결말은 혹시 읽을지 모를 분들을 위해 말하지 않고 남겨둡니다.

영화나 드라마, 웹툰이나 웹소설이 주는 재미나 감동과는 다른, 또 다른 묘한 울림을 원하신다면 커피 한 잔 음미하며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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