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위안이 되는 찬욱적 사고와 항준적 사고
우연히 박찬욱 감독 집안의 가훈이 ‘아님 말고’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박찬욱 감독의 아들이 학교 숙제라며 가훈을 물어왔다고 하지요. 이리저리 지금껏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며 가훈을 생각하다 보니 자신이 ‘아님 말고’의 마인드로 살아왔던 것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 저건 내게 가장 중요한 정신인데?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화인지 누군가 꾸며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게는 값진 에피소드다. 저는 생각이 너무 많거든요. 무언가 하나 일을 벌이려고 해도 꽤 오랜 세월을 질질 끄는 편입니다. 막상 일단 시작하면 재미있어서 흠뻑 빠져 하게 되는 일도 머릿속에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부풀려졌다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져 버려서 아예 일을 벌여보지도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글을 쓰는 것만 해도 그냥 노트북을 열고 글을 적어나가면 되는 일을 머릿속에서 이일 저일을 생각하다가 하루 이틀 차일피일 미뤄두곤 했었습니다.
그런 제게 삶을, 일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주는 주문 같은 말이 ‘아님 말고!’였습니다. 삶에 대한 한없는 낙관, 재미에 대한 한없는 추구가 느껴집니다. 아마도 박감독은 어느 날 마음이 동하는 일이 생기면 일단 그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뛰어들었을 겁니다. 얼마나 신났을까요. 그러다가 어느 무렵 어라?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들면, 그때 ‘아님 말고’하며 돌아섰겠지요. 그리고 또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뛰어드는 겁니다. 그게 박찬욱 감독의 삶이었다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아님 말고’
막연한 두려움에 시작을 못할 때 주문처럼 중얼거릴 생각입니다.
우연히 장항준 감독의 짧은 토크가 담긴 쇼츠를 봤습니다. 장성규 아나운서가 묻습니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고. 고2 때 아버지 사업이 망했을 때라고 회고했습니다. 다시 아나운서가 묻습니다. 그럴 때는 어떤 생각을 하냐고. 장항준 감독의 대답이 시원하더군요. “시쳇말로 나만 X 되는 거 아냐. 그런 생각하지. 아무리 부자여도 지팡이 짚고 다니게 되고 누구나 다 죽어.” 쇼츠 상단에 큼직하게 ‘힘들 때 위안이 되는 항준적 사고’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저도 따라 중얼거려 봤습니다. "나만 x 되는 거 아냐." 신기하게 정말 위안이 되더군요.
인스타를 보다보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궁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돈 못 버는 것 같던 개똥이 녀석도 일식 오마카세를 먹었고, 나보다 못 나가는 것 같던 칠복이 녀석도 테슬라를 몰고 다닙니다. 페이스북을 훑다 보면 나만 세상에서 제일 무가치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자칭 대단한 일을 했다며 자랑에 여념이 없는데 말이지요. 유튜브를 시청하다 보면 나만 무능력한 거 같습니다. 아직 나이 30도 안된 애들이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어들인다고 합니다. 한없이 내가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그럴 때 항준적 사고는 위안이 됩니다. ‘나만 x 되는 거 아냐.’ 어찌나 마음이 든든해지던지요.
뭔가 삶이 우중충하다고 느껴지면 조용히 꺼내서 읊조릴 생각입니다.
‘나만 x되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