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에 대한 반박
저는 성격이 무던한 편이어서 화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제 선임은 그런 저를 정말 ‘들들 볶았습니다.’ 저는 행정병 출신입니다. 제가 이등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아서 갔을 때, 제 사수는 병장 말호봉이었습니다. 요즘 군대는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지만, 지금부터 30년 전의 군대에서는 ‘갈굼’이 일상이었습니다. 저의 사수는 저를 엄청 갈궜습니다. 제가 빨리 일을 배워 실전에 투입되어야 그가 말년의 ‘자유’를 더 빨리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등병은 선임과 ‘접촉’만 있어도 관등성명이 튀어나와야 했습니다. 그 정도로 ‘똥군기’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자대에 배치된 이등병은 따라서 똘망똘망할 수 없었습니다. 다 바보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선임은 ‘똥군기’가 바짝 든 ‘똘망똘망한’ 후임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니 ‘갈굼’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선임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는데, 대구 사람이었던 그의 입에서 ‘지금 밥이 넘어가냐?’라는 말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설움이 차오르곤 했었습니다. 30년이 넘어도 그 설움이 기억납니다.
군대는 26개월, 2년 4개월만 그 설움을 버티면 됐습니다. 하지만 그게 한평생이면 문제입니다. 사실 일은 일이고 밥은 밥입니다. 일이 잘 안 된다고 밥이 안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일이 잘 안 되면 밥이 안 넘어가야 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데 친구가 방해가 되면 ‘친구가 밥 먹여 주냐?’고 합니다. 친구는 친구고 밥은 밥이며 그 밥을 먹여주는 ‘일’은 ‘일’ 일뿐입니다. 일이 잘 되게 하기 위해 친구를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친구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사회 초년병일 때에는 그 중요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일은 삶을 행복하기 위함임을 종종 잊었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취미와 취향과 쉼과 여유를 몽땅 갈아 넣어서 일과 성공에 매진하는 것이 인생이 아님을 몰랐습니다. 좌충우돌이었고 이렇다 할 결과도 쟁취하지 못한 채 그토록 소중한 청춘을, 젊은 시절을 허비했습니다. 제가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을 때,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노라 작정했습니다.
일을 대충하겠다는 결심이 아닙니다. 치열하게 일하되 그 일이라는 것은 내 삶에서 달콤한 행복을 위한 겉껍질이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슈크림빵 같은 것 말입니다. 달콤한 슈크림을 보호하는 정도의 껍질 역할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슈크림빵이 슈크림만으로 이루어질 수도 없지만, 껍데기인 빵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요.
슈크림 역시도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3F를 든다고 합니다. Family, Friend, Food. 이 셋이 괜찮으면 다른 게 조금 엉망이어도 인생이 살만하다고 느껴진답니다. 저는 Football과 Fashion 같은 것을 넣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Fantasy novel도 괜찮고요.
가족이 전부가 되어서도 안 되고 친구가 전부여서도 안 됩니다. 소중한 것들은 다 저마다의 ‘몫’이 있습니다. 그 분량이 조금씩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어느 하나도 내팽개쳐서는 곤란합니다. 간혹 뉴스에 오르내리는 이들 중 인터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유명인들을 봅니다. 어릴 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다다를 수 있는 정상이라면 여러모로 황량할 것 같습니다. 제가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의 여우 같아서 좀 민망하긴 합니다. 성공을 못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니까요. 하지만 전 할당한 시간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균등하게 ‘시간’을 할당하자는 게 아니에요. 다만 마음속으로 느끼는 ‘소중함’을 할당하면 됩니다. 행복은 그렇게 ‘소중함’을 할당한 여러 가지의 재료들이 혼합되어 만들어지는 달콤함이지 않을까요.
일만큼 중요한 것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일도 잘될 것 같습니다. 진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