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아이스크림이 더 빨리 녹는 듯.

- 우리가 AI를 실컷 부려먹어야 하는 이유

by 강호

한동안은 인생이 도자기 같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도자기가 뜨거운 불 속에서 구워지듯, 빛나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조금씩 참아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우리 나이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게 배우지 않았나요? 하루하루 착실히 노력을 쌓아 올려야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고요. 어제 읽은 책 한 구절이 내 삶의 양식이 되고 오늘 흘린 땀 한 방울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거름이 된다고 믿고 살아왔지요.


이러저러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은 젊은 날의 꿈과 기대, 설렘을 냉혹한 현실 속에서 먼지로 바꿔버립니다.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되면 책에 서명을 남겨 줄 때 쓰겠다고 책상 깊숙이 넣어둔 만년필은 여기저기 때가 묻어 낡아있습니다. 조금 한가해지면 자주 산에 오르겠다 다짐하며 사서 신발장에 넣어둔 등산화는 밑장이 부스러져 못 신게 되었습니다. 밑창의 원료인 폴리우레탄이 가수분해 되어 그렇게 된다더군요. 삶도 가수분해 된 듯 허망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말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은 아이스크림 같아요. 녹기 전에 즐기세요.'


삶은 원래 이렇게 녹기 쉬운 아이스크림인 건데, AI가 그걸 훨씬 빠르게 하는 듯해요.


얼마 전에 한국에 테슬라의 FSD(full self-driving)이 풀렸습니다. 배터리 문제를 덮으려고 테슬라가 한국에 일찍 FSD를 푼 것이라 하더군요. 여러 발 빠른 유튜버들의 사용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데이터도 많이 축적되지 않았을 터인데 거의 상당히 완성도 높게 자율 운전이 이뤄지더군요. 이제 많은 한국 사람들의 데이터가 축적이 되면 FSD의 성능도 계속 좋아지겠지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인간의 운전보다 훨씬 안전한 자율 주행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현재도 사실은 인간이 운전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문명의 이기를 잘 사용하면 그만일 텐데 그걸 보는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자율 주행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죠. 현재 개발되고 있는 로봇의 기능은 세상 곳곳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의 누적된 노동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숙련’이라는 선물을 비웃듯 로봇이 척척 그 숙련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퍽퍽 부수고 있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의 <로봇이 입사했습니다>를 한 번 봐보세요.) 인생이 도자기 같다고 믿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마치 장인처럼 착실하게 노력하고 그 노력을 통해 한거풀씩 기능을 쌓아올리는 것처럼 인생을 대하면 큰일 나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개발자들의 축적된 노력이 한순간에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것을 보면 말이죠.(제가 코딩을 조금 배워봤습니다. 제대로 된 개발자가 되려면 꽤 오랜 시간 코딩에 시간을 투여해야 하더군요.)


출퇴근 길에, 혹은 잠시 쉴 때 잠깐잠깐 생각해 봤어요. 그러다 결론을 내렸죠. 돈과 바꾸기 위해 노력을 축적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고요.(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제 생각에는 그래요. 그건 인공지능이 모두 대체할 겁니다. ‘효율’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지요.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손쉬운 것이 그렇지 않은 것을 대체해 온 것이 역사였으니까요.


그런데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호기심을 위해 노력을 축적하는 것은 여전히 유의미합니다. 이 역시 제 생각이에요. 외국어를 익혀 바다 건너 친구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무의미할까요? 물론 잘 발달된 디지털 디바이스가 소통을 아주 원활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자기 자신이 느끼는 감각은 다를 겁니다. 또 세상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사람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책을 읽고 사회학을, 철학을,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 역시 여전히 유의미합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똑똑해도 가르쳐줄 수 있을 뿐, 느끼고 깨닫는 것은 여전히 우리들 인간이니까요. 박태웅 의장님이 어느 방송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인공지능에게 내가 할 일을 맡기는 건, 헬스클럽 코치에게 운동을 대신 맡기는 것과 같다고요.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만, 이 화두를 부여잡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인공지능과 씨름하며 살아갑니다. 제 주특기가 ‘낙관적으로 생각하기’입니다만,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그게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한주도 회사에서 AI를 활용한 자동화, AX 등을 고민하다 돌아왔습니다. AX의 끝에 뭐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죄수의 신세 같기도 합니다.


위안이 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만 차치하면, 인공지능은 축복과도 같다는 겁니다. 최고의 스승이기도 하고 최고의 비서이기도 합니다. 척척박사를 옆에 앉혀놓고 있는 기분입니다. 아주 초보적인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해도 삶의 질이 엄청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아껴서일까요? 요즘 들어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났어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시민이 된 듯 착각하면서 말이죠. 혹시 또 모를 일이지요. 일론 머스크의 말대로 우리 모두가 ‘노동’에서 해방되어 예술과 철학을 향유하며 살아가게 될지요.


그냥 AI와 매일 조금씩 친해지려 합니다. 어차피 얘가 내 일자리를 언젠가 빼앗아갈 거라면 그전에 실컷 부려먹기라도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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