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라는 병
제가 어렸을 때는 ‘좋은 대학'만 나오면 취업은 어렵지 않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거의 맞았지요. 적어도 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저도 나름 ' 좋은 대학‘을 나온 경우인데요, 제 선배들은 외환위기 전에는 언론사 PD나 기자가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다가 떨어지면 삼성, 현대, 엘지, 대우 등의 입사 지원서를 들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곤 했습니다. 분명한 건 그분들이 아무리 대학시절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지냈더라도 그중 한 곳에는 들어가곤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대기업 입사지원을 해도 인문학부 출신은 1차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인문계라 죄송’하고 ‘인문계의 90%는 논다’는 ‘인구론’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확인을 못했지만 취업박람회 한편에 대형 쓰레기통이 있고 이공계와 경상대를 제외한 학부의 입사지원서는 그리로 들어간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돌곤 했었지요. 대학에서 그토록 쉽다던 대기업 입사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린 겁니다. 세상이 바뀐 것이었지요.
요즘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들도 무척 힘들다고 합니다. 사건은 그대로인데 변호사 수는 엄청나게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옛날에는 한 해에 60명씩만 뽑던 변호사들을 요즘은 한 해에 몇 천 명씩 배출하니까요. 법조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커질 수밖에 없겠지요. 과거처럼 변호사라고 모두 돈 잘 버는 시대는 지난 것입니다. 그건 의사도 마찬가지고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수의 의사가 여러 대학에서 배출되고 있는 반면, 정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의사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요. 아무래도 옛날 같은 지위를 누리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한의사도 마찬가지고요. 한의사는 90년 이후로 한 해에 800명씩 쏟아져 나왔지요. 게다가 보약이나 개소주를 만들어 파는 건강원, 그리고 홍삼제품 등의 건강식품 등과도 경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법대 의대 가느라 고생하고 로스쿨, 의학대학원 다니느라 돈과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학생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겠지요. 특히 나의 적성과 비전과는 상관없이 부모가 옛날 경험만 믿고 ‘한국에서는 법조인과 의사는 아무리 그래도 안 망한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한 공부라면 더더욱 억울할 겁니다.
앞에서도 잠시 얘기했듯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취직하면 평생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회사에 입사하더라도 일의 강도가 매우 높고 안정적이지도 않습니다. 1~2년 만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고 적응을 잘했더라도 7-10년 정도 일하다가는 회사를 그만둬야 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그만뒀을 때 이직이 쉽지 않고, 다른 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어휴, 회사 때려치우고 음식장사나 해야지.’
이런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말입니다. 지금은 자영업 분야가 포화상태여서 한 집이 창업하면 한 집이 망하는 수준입니다. 대부분 회사 그만두고 만만한 마음으로 차린 음식점들은 금방 망하곤 하지요. 음식 장사를 아주 진지하게 준비한 프로들과 경쟁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마흔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반면 그러는 사이, 새로운 방식으로 부와 명성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굳이 대학을 중퇴하고 마이크로 소프트나 애플을 세운 미국의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들먹이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에도 명문대 나오지 않고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아 성공하는 사람이 줄줄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세우거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사람,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 꽤 많지요.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런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분들은 대한민국이 급격히 성장하는 시기를 살았습니다. 지금처럼 창조적인 머리를 돌려야 하는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회사마다 시키는 일 잘하는 인력이 필요했고요. 세계를 무대로 시장을 넓혀나가고 있었으니 기본적인 성실성과 조직친화력이 있는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직원들을 뽑아야 했고, 교육은 그런 인재들을 양산하는데 최적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었지요. 디지털 기기들, 모바일 기기들이 시장 자체를 송두리째 뒤바꾸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내비게이션, PMP, 카세트, CD, 녹음기, 전자계산기, 시계 등등이 모두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기기들을 만들던 회사들은 아주 힘들어졌거나 망했습니다. 이른바 파괴적 혁신입니다. 에어 b&b는 호텔과 펜션 등 기존의 숙박업을 파괴적으로 혁신하고 있습니다. 우버는 택시 업계를 유린하다 싶을 정도로 변화시키고 있고요. 콜택시에는 카카오톡이 들어와서 완전히 시장을 재편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모바일 기술이 앞으로 어느 분야, 무엇을 파괴적으로 혁신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동안 영광을 누려왔던 안정된 영역이 파괴적 혁신의 최우선 대상이 될 거라는 점입니다.
최근에 주유소와 주차장에를 가본 적이 있다면 금방 깨달았을 겁니다. 주유소는 점점 셀프 주유소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주차장도 무인주차장, 카드 전용 주차장이 늘어나고 있지요. 지하철에서 지하철 표를 파는 역무원을 못 보게 된지는 오래입니다. 최근에는 주문을 자판기로 받는 라면집도 여러 곳 생겼습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키오스크가 점원을 대신합니다.
이제 앞으로의 세상을 지난 시절 살아온 경험으로 예측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 불가능할 듯하네요. 어쩌면 부모세대가 했던 것을 거꾸로 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집 없는 설움을 겪었던 부모세대는 어떻게든 집을 사고 그 빚을 갚으며 한평생을 보냈습니다. 그걸 따라 하다가는 언제 집값이 반토막 될지 모릅니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10년 후 세상은 지금보다 더 엄청나게 변화할 것입니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미래 세상을 부모가 예측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그 미래는 이렇게 준비하라고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아이에게 ‘한국에서는 일단 대학만 좋은 데 가면 돼. 그럼 끝이야.’라고 말하는 게 잘하는 것일까요?
최고의 미래학자도 내다보기 힘든 게 10년 후 미래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아온 경험만 믿고 그 경험에 기대어 괜히 아이의 삶과 미래를 더 꼬이게 하지 말고, 그냥 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찾도록 내버려두자고요. 부모가 해줄 건 얄팍한 자신의 경험에 비춰 아이들의 미래를 재단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식이 자기 길을 잘 찾아가도록 격려하고 사랑의 울타리로 자식의 인성과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문제이긴 하지만요.)
제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으면서 훈수를 둘 수는 없지요.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저 역시 부모님 말씀대로 살아온 건 아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