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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Mar 24. 2020

수능 국어 시험은 왜 매년 어려워질까?

- '독해력'의 시대

제가 다니는 회사는 수능 국어 시험을 대비하는 교재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수능 국어 시험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몰랐습니다. 처음 놀랐던 것은 학생들이 국어 과목을 '재능'의 영역으로 둔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국어 성적이 쉽게 오르지 않아서 학생들은 수능 국어를 잘하려면 선천적으로 잘 읽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이해가 되지 않았죠. 국어 시험이야말로 참고서 펴놓고 서한샘 선생님 강의 들으며 '진달래 꽁야' 하며 '딸딸' 외우면 되는 '암기 과목'인데 이게 무슨 말씀? 그랬습니다. 제가 뭘 몰랐던 거죠. 저는 학력고사 세대거든요. 


회사에 들어가서 수능 국어 시험을 찬찬히 뜯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제야 수능 국어 시험이 지문과 문제로 구성되어 있는 생김새는 학력고사 시절의 국어 시험과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시험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요. 일단 가장 큰 차이점은 시험 범위가 거의 무제한이라는 점이었죠. 학력고사 때는 교과서에 수록된 지문을 시험 문제로 냈기 때문에 시험 범위가 딱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말이죠. 시험 범위가 무제한이라는 얘기는 외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거기서부터 시험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학력고사는 '지식의 양'을 테스트한다면, 수능 국어는 '독해의 능력'을 테스트한다고 보면 됩니다. '얼마나 알고 있느냐'를 묻는 것과 '얼마나 잘 읽느냐'를 묻는 것은 그 목적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얼마나 알고 있느냐를 묻는 시험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을 규정해 놓은 시절의 시험입니다. 교과서만 제대로 잘 알아도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는 시절의 '유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얼마나 많이 아느냐'는 경쟁력이 되지 못합니다. 흔한 농담으로 '지식인'이나 '구글 신'에게 원사이드 하게 뒤쳐지니까요.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정말 1초 이내로 완벽한 정보를 취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암기형 지식의 습득에 필요한 외우는 뇌는 그걸로 충분하죠. 


그럼 수능 국어는 왜 '독해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걸까요. 궁극적으로는 독해력이 지식의 생성과 배움의 지속성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고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들은 새로운 배움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디지털입니다. 디지털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반하기 때문에 인간은 의도적으로 배워야만 그 원리와 기능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래머나 소프트웨어 기획자들이 최대한 인간이 배우기 쉽게 가다듬고 있지만 그럼에도 학습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요. 게다가 '중후장대'한 장치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순간 휙휙 바뀝니다. 카톡이 뜨는가 하면 텔레그램이 뜨고 페북이 뜨는가 하면 인스타그램이 떴다가 틱톡이 떴다가 합니다. 이제 기술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흐릅니다. 그 물결에 몸을 담그고 새롭게 쏟아지는 기술과 그 기술의 산물을 배우고 익히고 버리고, 또 새로운 것을 선택하려면 새로운 독해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요. 디지털 정보, 데이터 정보, 숫자 정보, 자료 정보 등을 빠르게 읽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인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수능 국어 시험은 짧게 보면 난이도가 들쭉날쭉하지만, 길게 보면 꾸준히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고안해낸 난이도 측정방법으로 측정을 해보면 94년 수능이 처음 시작할 때의 난이도를 10이라고 보면, 2019년도의 수능 국어 시험은 100을 넘어설 정도입니다. 10배 이상 어려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그와 같은 난이도의 상승은 그만큼 복잡해진 사회와 기술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년 수능이 끝나면 기자분들이 풀어보고는 '명문대 나온 나도 못 푸는 수능 국어, 문제 있다.' 이런 류의 기사를 적는 것을 봅니다. 시험이니까 아무런 준비 없이 쓱 푸는 분이 다 맞춰도 문제가 안 좋은 거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제 세상이 예전과는 다른 독해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기자분들도 그런 의미에서는 어려운 글을 읽는 연습을 조금 더 하는 것이 좋겠지요. 


훈련에 따라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느냐는 현격한 역량의 차이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처음 출발할 때 10도 정도의 방향 차이로 출발한 사람의 10여 년 후 최종 목적지 차이는 어마어마하죠.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와 같은 독해력의 차이가 '부의 차이'를 양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식이나 펀드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볼라치면 엄청난 숫자 폭탄들이 투하됩니다. 창구 직원들이 기계적으로 외운 수익률과 원금보장 말만 믿고 노후자금을 맡겼다가 원금이 반토막 났다는 신문기사를 접한 적이 있을 겁니다. 수많은 지수들과 기간 단위의 통계치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뒷걸음치게 만듭니다. 기계의 사용설명서나 약품의 사용설명서를 읽어내는 것도 점점 힘들어집니다. 장사를 하려 해도 온라인 마케팅이나 모바일 광고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독해 능력이 훨씬 고급화되고 있습니다. 단지 한글로 써진 것을 읽을 수 있는 정도로 세상을 따라가기 어려워지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고급한 독해를 못한다고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엄청난 기회들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고, 작은 기회들은 꽤 많이 놓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어렵게 하고, 못된 사람들의 사기를 당하게 되는 일이 늘어나게 될 겁니다. 안타깝게도요.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등 세계적인 갑부들이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 중에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어려운 글을 읽는 훈련을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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