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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방위병 비화 5

필승, 나의 22살.

by 정건우

해병대 방위병 비화 5 / 정건우

신참이 한 명 들어왔다. 개그콘서트의 옥동자처럼 생긴 인물이었는데, 아무래도 어디에 손을 좀 써서 비교적 편하다는 이곳으로 배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리바리한 인물이었다. 소위 뒷빽이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갔다. 처음부터 하는 짓이 어째 불안했다. 왼쪽으로 가라면 꼭 오른쪽을 두리번거리는 스타일이다.

"왜 오른쪽으론 가란 말을 안 하지?”

하며 생각이 뒤따르는 전형적 고문관 스타일, 아니 고문관이었다. 00 대학 중국어과에 다니다 차출된 인물이다. 지금도 중국어과는 내게 그리 희망적 메시지를 주지 않는다. 선임들을 불러다 놓고 회의를 했다. 저 인물에게 총을 줄 거냐 말 거냐, 도대체 무얼 시키면 좋겠느냐 뭐 이런 식의 골치 아픈 회의였다. 결국 내가 결정을 내렸다.


"저 놈 제대할 때까지 이렇게 하도록 하라. 모든 후임들에게 전파해라. 이건 사람하나 살리자고 하는 짓임을 명심하라“

우선 철공소에 아르바이트 다니는 대원에게 회칼을 하나 만들어오라고 지시했다. 정말로 기막힌 칼을 만들어 왔다. 고문관 기00은 그 칼을 들고 주변에서 제일 크고 전망 좋은 횟집 주방에 쭈그리고 앉아 허드렛일을 도우며 회치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그가 할 과업의 50%다. 일종의 대민 봉사인 셈이다. 그럼 나머지는?. 새벽 한 시면 야식으로 라면을 먹는데, 그 취사 전임자를 기00이 한다. 그리고 내무반과 상황실의 청소, 정리 정돈 등 환경 미화 작업을 전임한다. 그게 또한 과업의 50%니 파격적 근무 조건이다. 처음에는 횟집 주방장에게 귀찮다고 쫓겨나기도 하고 욕도 얻어먹고 난리였다던데, 그냥 오면 각하한테 맞아 죽는다고 그랬더니 주방장이 내 깊은 속내를 헤아려 그럭저럭 대해준 모양이다.


며칠 되지도 않아 기00은 자신의 과업을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다. 과업 진도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궁금해서 횟집에 들러 봤더니 주방장 왈,

"이렇게 손이 매끄러운 놈은 처음이야. 체질이야 체질, 처음엔 쪼다 같더니 그게 아니더라고" 난 그걸 첫눈에 알아봤노라고 구라를 치고, 잘 부탁한다며 담배 몇 갑을 전하고는 또 절을 했다. 라면 끓이고, 먹고 나서 설거지하는 기00의 손길은 섬세했다. 요리도 썩 잘해서 횟집에서 얻어온 매운탕 베이스에 계란 팍, 파 송송은 기본에 또 어디서 구했는지 각종 채소가 푸짐하다. 또한 각종 세제를 널어놓고 기름기 하나 없이 설거지를 하고는 그릇을 뽀송하게 건조까지 시킨다. 그 이빨처럼 정연한 식기 배열,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기00. 나는 혀를 몇 번이나 찼는지 모른다. 다행스럽고도 슬픈 기분이 교차했다. 이 개월 후, 내가 없더라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 연결되기를 바라보지만 어디 그것이 내 맘대로 되는 일이던가?.


그러다 그만 세월이 한 이십 년 넘게 흘렀다. 사무실에서 복사기 고치는 A/S 맨 목소리의 특이한 억양이 귀에 익길래 혹시 전략기동부대소속 아니었냐고 물어보니 "아니, 각하가 여기에?" 하며 입을 쩍 벌리고 날 알아보는 것이다. 세 달 후임이었다. 정말이지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다. 그 가래 끓는 동기들 다섯 명이 지금도 매 월 셋째 일요일 모모한 장소에서 부부동반으로 모인단다. 나를 그렇게나 찾아 헤맸다고 한다. 어디에서 모이냐니까 바로 그 기00 집이다. 그는 실내장식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아, 보고 싶었던 기00. 갔다. 혼자 갔더니 마침 기00이 주방에서 나오는 모습인데, 양손에 회 사발을 받쳐 들고 나오다 어찌 내 얘기를 들었는지 단박에 알아보고는,

"가악 하아아”

하며 사발을 고이 내려놓고 천천히 다가와 와락 안기는 것이다. 좀 징그럽기는 했다.


"저 사람이 그 각하가?”

옆방에서 따로 고스톱 치던 예비역 기동부대 부인들이 수군거리며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기00의 회를 맛나게 먹으며 옛날 얘기를 들었다. 과연 기00은 총 몇 번 만지지 않고 편안하게 전역했단다. 나는 그 대목에서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왜 각하, 장군님, 개판으로 하는 경례, 칼 같은 군복, 요따위를 야구 방망이 휘두르며 시켰는지 언젠가 만나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며, 기00이 진지하고 참으로 궁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냥 웃었어 쓸쓸히.

- 필승, 나의 22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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