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네가 만들라는 얘기야
"다보탑을 만들어야겠다" / 정건우
80년, 고 3 때 나는 기계조립과 실습조교였다. 실습수업 시간에는 정밀측정실에서 일했다. 2학년 후배들이 가공한 제품을 측정하여 채점하고, 결과에 따라 기합도 주고 기술 지도를 하는 등 실기교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업무가 보기보다 녹녹지 않아 보였는지 학교에선 내게 교내 장학금을 매달 만원을 지급했다. 당시 기숙사비가 월 만 오백 원이었으니 상당한 금액이었다. 따라서 나는 친구들에 비해 주머니 사정이 좀 나았고, 사시사철 20도로 유지되는 쾌적한 환경에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며 생활했다. 그러나 후배들 실습만큼은 내 성격대로 매우 깐깐하게 지도하여 후배들에겐 "공포의 감자"로 불렸다(강원도 양구 출신). 실기교사가 학습을 거의 내게 일임하듯 해서 나는 후배들과 같이 뒹굴며 나름 엄하고 자상하게 실기 실력을 키운다고 애썼다.
9월 초였다. 평소에 잘 안 오시던 담임선생이 아침 일찍 측정실에 오셨다. 그러고는 대뜸 “다보탑을 만들어야겠다”라고 하시는 것이다. “다보탑이라니요?”. “다보탑 몰라? 경주 불국사에 있는 그거?”기가 막혔다. 그걸 만드는 데 측정실엔 왜 오셨냐는 눈치를 보내자 “물론 네가 만들라는 얘기야”하며 자초지종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산의 모모한 유력자가 교장선생님과 담소 중 다보탑 얘기가 나왔는데, 어찌하다 그만 교장 선생께서 덜컥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얘기였다. 담임은 매우 착잡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내 얼굴만 빤히 바라보시는 것이다. 나는 내심 상당히 당황하였지만 이내 침착하게 질문하였다. “도면이나, 기타 자료 같은 것은 혹시 있나요?”. “물론 없지”내가 별안간 웃자 담임은 내 등짝을 후려치며 더 큰소리로 웃으시는 것이었다.
아무 자료도, 상세한 요구 조건도 없는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다보탑을 만들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그것도 10월 30일까지 2세트를 만들란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방과 후까지 대강의 계획을 꾸려 교장실로 가야 했기에 실기교사께 양해를 구하고 머리를 싸맸다. 즉시 도서관으로 달려가 다보탑 자료를 뒤졌으나 대충 알 수 있었던 것은, 탑의 기단 전폭과 상륜부 보개 끝까지의 높이 비율이 1:1.47쯤 된다는 정도였다. 탑의 각 부품 조립 방법을 1.5~2mm 정도의 구멍에 상호핀을 박아서 체결하는 구조로 했을 때, 폭 239mm, 높이 351mm 정도의 탑 외형이 도출되었다. 각 부품을 조립 단위의 블록으로 나눠 종이로 대충 접은 후 세워보니 제법 아름다운 비율이었다. 앞으로 55일 내로 2세트를 만들자면 서둘러야 하는 데 인력 동원이 문제였다.
교장 선생님은 탑의 크기와 조립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고 매우 만족해하셨다. “유리 안에 넣어 밀봉 형태로 전시한다?. 좋은 생각이다 정군아”하며 박수를 치시고 “가공면의 결을 살리기 위해 도금을 하지 않고, 방청유 처리하고, 녹이 슬면 자연 그대로 둔다는 발상도 탁월해, 이 놈 물건이구만”하시며 대견해하셨다. 인력은 특활생을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히 활용하도록 허락하셨고, 담당 교사들에게 이런 상황을 귀띔해 놓겠다고 약속하셨다. 기계조립, 선반, 밀링 등 담당 특활생은 내일 당장 선발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나는 모레 토요일 오후에 불국사로 직접 가서 일요일까지 현장 스케치 후 도면화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고를 마쳤다. 교장 선생님은 내게 특별한 보안을 당부하셨고 담임선생님과 따로 할 얘기가 있다며 나를 물리시는 것이었다.
금요일 오전에 담임께서 또 측정실에 오셨다. 봉투 하나를 주시면서 여비로 쓰라는 것이다. 제법 두툼한 봉투였다. “특활생에게 용돈을 네가 조금 주면 좋지, 다 만들고 나면 교장 선생께서 따로 부르실 것이다”라며 부디 성공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토요일 오후에 해운대역에서 불국사역으로 가는 중앙선 열차를 탔다. 불국사 앞 상가의 서라벌 여관에 도착했을 때는 상당히 늦은 저녁이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가을을 재촉하겠다는 듯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쉽게 그칠 기세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비를 맞고 스케치를 해야 한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관 주인께 큰 우산을 미리 빌렸다. 비 오는 날 16절 갱지는 무리어서 수첩 크기만 하게 메모지를 준비하였다. 불국사 개장과 동시에 입장만 하면 된다. 웬일인지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빗방울이 제법 굵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국사 출입문은 한산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서둘러 다보탑으로 갔다. 대웅전 앞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그야말로 고색창연하였으나 내 눈엔 더 이상 풍경으로 잡히지 아니하였다. 석가탑과 대웅전을 버리고 오로지 다보탑에 집중하였다. 일단 탑 기단의 전체 폭과 기단부 높이, 석주와 난간석의 두께, 탑신 석주의 높이와 두께를 스님들 눈길을 피해 가며 재주껏 실측하였다. 옥개석 부분은 탑신 석주의 배치 비율대로 예측하였고, 2층 탑신부 상, 중, 하단의 팔각신부와 난간, 상륜부의 보륜과 양화, 2층 옥개석은 탑 기단의 폭을 베이스로 하여 목측하였다. 그리고 팔각 연화석과 난간, 신부 및 주두, 옥개석 등 가공이 까다로운 부품들의 유사 형상 구현, 가공 및 조립 용이성에 신경을 집중했다.
오후 늦게까지 가장 까다로운 팔각 연화석과 난간을 집중 관찰, 가공 조립 방법을 최종 구상하고 한밤중에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계가공의 용이성과 부품의 실체감을 만족하는 범위에서 스케치 형식으로 치수를 기입하는 도면화 작업을 꼬박 이틀 만에 끝냈다. 그리고 담당 특활생들을 매점으로 불러 다과를 베풀어 꼬셨다. 이미 알고 온 3명은 스케치 도면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엄살을 떨었지만 만 오천 원씩 지급된 공작금에 전부 입을 다물었다. “잘 그렸네, 이 정도야 뭐, 하루 두 시간 한다 보고, 10월 25일 까지면 되겠냐?” 과자를 먹으며 다들 룰루랄라 하는 분위기로 들떠있었다. 올봄에 실시한 전국 기능경기대회 금메달 수상자인 이들에게 내가 그린 다보탑은 도면도 아니었다. 녀석들은 수시로 도면의 수정 변경을 통보하며 가공성과 실체성을 극대화하며 작업했다. 과연 금메달 감들이다. 동료지만 나는 그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간식으로 전했다.
녀석들이 좋아하는 매점의 도넛과 음료, 과자를 수시로 공급한 덕인지 10월 20일 오전에 부품 가공을 완전히 마쳤다. 오후에 담임선생을 초빙하여 조립 광경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미 준비한 전시용 유리함은 앞면과 상부만 개방된 채 입고되어 있었다. 1.5~2mm 직경의 핀으로 조립되며 형상을 갖춰가는 다보탑 앞에서 담임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계요소를 가르치는 담임도 이런 작업 광경은 처음 본다고 하였다. 너희들이 공고생이 맞느냐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는 것이었다. 방청유를 적당히 도포한 다보탑은 각 부품의 각과 선, 굴곡의 윤곽이 기계가공면에서 비치는 결의 반짝임으로 매우 아름답고 은은하며 장엄하기까지 한 느낌을 주었다. 다음 날 아침에 탑을 교장실로 운송하였다. 교장 선생님이 두 손을 올리며 탄성 하시는 것이었다. "부처님 맙소사".
※ Epilogue
교장 선생님은 내게 따로 봉투 하나를 주셨다. 상당히 두툼했다. 나는 특활생들에게 똑같은 몫으로 배분하였고, 해운대 동백섬의 인어상이 내려다 보이는 노천 횟집에서 고생한 학도들에게 생선회를 대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