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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을 잠시 다녀간 천사

한 여인을 추억하며

by 정건우

우리 곁 잠시 녀간 천사 / 정건우


신비한 여인이었다. 우리 곁을 잠시 다녀간 천사였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중 3 때, 한여름이었다. 서천에서 아버지와 내가 투망으로 잡은 피라미를 함 씨 댁에 갖다 주러 갔을 때였다. 선득한 너럭바위를 돌아 외딴 너와집에 갔더니, 널따란 마당 귀퉁이에서 함 씨 딸 태숙이와 푸성귀를 다듬고 있던 그녀를 본 것이다. 나보다 한 살아래 태숙이는 "오빠, 오빠야"를 연발하며 망아지처럼 길길이 뛰면서 반기는데, 그 여인이 다소곳이 일어나더니 가볍게 목례를 하는 것이었다. 아들뻘 되는 나에게 목례라니.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잔뜩 숙여 인사를 받는 둥 하는 둥 하였다. 어린 내 눈에도 여인의 그런 순간적인 자세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지극히 절제된 행동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채 무언가 아귀가 딱 들어맞는 듯이 매우 자연스럽고 세련되며 우아하였다. 이런 시골 깡촌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제스처였다. 나는 눈빛으로 저분이 누구냐고 태숙이에게 물었다. "아, 우리 새엄마야 오빠, 그러기로 했어"태숙이는 여전히 천방지축이었다. 이쁘장한 얼굴이지만 옷소매에 땟국이 꼬질꼬질해서 항상 내게 타박을 받는 태숙인데, 오늘은 멀쩡한 것이 의아했다. 저 여인의 손길을 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함 씨는 아버지가 복무하던 부대의 장교 출신이었단다. 두 분이 함께 근무한 적은 없었지만 같은 부대 출신임을 우연히 알게 된 후로 급격히 친해진 사회 친구 간이셨다. 함 씨가 아버지보다 두 살 연배였고, 일찌감치 상처를 하셔서 홀로 된 지 십여 년쯤 되는 외로운 분이었다. 화물 운송 계통에서 일하셨는데 좀체 말이 없는 분이었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사람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 함 씨라는 것이다. 성정이 질풍노도 같던 나는 그 말씀이 탐탁지 않았지만 참으로 온화하셨던 것은 분명한 분이셨다. 딸 하나를 데리고 읍내에서 제법 떨어진 이 계곡 너와집에 고립된 채 사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불안했지만, 아버지가 각별히 챙기시는 분이라 나도 자연스레 태숙이를 동생처럼 대했다.


그날 저녁, 그 여인 얘기를 아버지께 했더니 깜짝 놀라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함 씨 아저씨께 그런 일이 생긴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던 것 같다. 다음 날 그 여인 이야기를 아버지께서 비교적 상세하게 들려주셨다. 지인의 결혼 잔치에 함 씨 아저씨와 태숙이가 갔었는데, 어찌하다가 태숙이가 마을 청년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었단다. 태숙이가 그 특유의 앙칼진 목청으로 따지고 대들어 잔치집이 좀 시끌시끌했던 서슬에 난데없이 그 사달 한복판으로 끼어든 사람이 그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소녀에게 손찌검이 말이 되냐며 매우 사납게 청년을 쏘아붙였다는 것인데, 청년도 지지 않고 당신이 뭔데 나서냐며 싸움을 키우는 형국이었단다. "내 딸이다, 내 딸이야, 어쩔래?"여인이 더욱 큰 소리로 몰아붙이자 소란은 멈췄고, 여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태숙이를 챙기더라는 것이었다. 불과 달포 전 그 일이 인연이 되어 여인이 너와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드라마 같은 얘기였다.


아버지 지인들 사이에서 함 씨 얘기는 순식간에 퍼지며 온갖 추측과 낭설이 설왕설래하였다. 여인이 이화여대 미술과를 졸업한 재원이라는 둥, 모 대학 교수였는데 엄혹한 시국에 낭인이 되어 떠돈다는 둥, 4개 국어에 능통하다는 둥, 며칠도 되지 않아 퍼지는 소문에 아버지는 그저 웃고 넘기시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나서 함 씨 아저씨는 화색이 돌고 한층 밝아졌다며 아버지는 좋아하셨다. 무엇보다 함 씨와 여인이 서로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 특히 기쁘다는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함 씨 아저씨는 생기를 찾게 되었는지 오랜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조짐이 곳곳에서 목도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그 여인을 면전에서 본 것은 그로부터 넉 달 정도 지난 겨울 저녁 집에서였다. 아버지 친구들 모임을 집에서 갖게 되었는데 그때 함 씨 아저씨와 그 여인이 오셨던 것이다. 품위 있고 예사스럽지 않은 기품이 여전하였는데, 아주 살갑고 반갑게 나를 대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복이 많아 좋은 친구를 얻었네. 부부 관계는 결코 아니니 오해는 마시게"함 씨 아저씨는 불콰하게 취하신 것이 유쾌해 보였고, "그 말이 그 말이고 퍽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인 걸 우리가 아는데 무슨 말씀이 그리 어렵소?"라는 어른들의 열띤 대화에 나는 옆방에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다 나는 첫여름방학 때 너와집을 다시 찾았다. 그때 태숙이는 툇마루에 이젤을 걸쳐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는데 이전처럼 호들갑스럽게 나를 대하지 않았다. "오빠, 안녕? 지금 오시는 중?"팔레트와 붓을 든 자세가 제법 화가다운 풍모를 느끼게 한 것이 신기했다. 앉은 상체가 한층 더 커 보이는 것이 예전처럼 허물없이 대하기가 주저스러울 정도로 그새 태숙이는 성장해 있었다. "오호라, 몬드리안을 그리고 계셨구먼 태숙 씨"내가 감탄하듯이 말하자 부엌에 계시던 부인께서 나오시는 것이었다. 언제 돌아왔냐며 조신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물으시는 기품이 여전하셔서 나는 무척이나 반갑고 기뻤다. 내어 주시는 찐 옥수수를 먹으며 부인과 나는 태숙의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림에 집중하는 태숙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지, 그쪽 선과 점의 간격을 명확하게 해. 두 객체가 명확해야 차가운 추상이 되는 거야" "옙썰, 엄마"나는 그 간단한 대화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작년 여름에 떠돌던 소문의 진앙지에서 몸으로 직접 느끼는 지진파였다. 소문대로 부인은 미술학도였을까?. 간간이 부인은 피에트 몬드리안과 바실리 칸딘스키 추상의 차가움과 뜨거움의 차이를 말하였는데 나는 그만 그 절도 있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도 떼지 못하였다. "태숙이 그림 솜씨가 괄목하게 나아지고 있어"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부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들었냐는 듯 한층 점잖고 안정된 눈빛으로 태숙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해 겨울방학 때 너와집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함박눈이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너럭바위 계곡 비탈에 빽빽한 자작나무 가지에 성기던 눈발이 그새 나무를 지우고 계곡을 메우더니 내가 온 길도 감춰버리는 것이었다. 태숙이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헤드폰을 두른 채 음악을 듣고 있는 듯하였다. 부인이 안 보이길래 행처를 물으니 태숙이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가셨어. 서울로 가신댔어. 생각나면 오신다고 하는데 글쎄"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탓에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괜찮냐고 물으니 걱정 붙들어 매란다. 또 몇 달 사이에 태숙이는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 그러면서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소문은 크게 겉돌지 않았다. 그녀의 고향은 인제였고 양구에 먼 친척이 있다는 것, 태숙이 만한 딸을 일찍 잃었다는 얘기와 여태껏 부인과 태숙이가 같은 방을 썼다는 것과 친딸처럼 품고 잤다는 것, 아버지와는 허물없는 친구 같은 사이라는 것, 아버지보다 두 살 많으니 누이로 부르라는 농담을 자주 했었다는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부인 덕에 망아지 같던 자신이 많이 다듬어진 것을 실감하며 무엇보다 그것이 고맙다는 것이었다. 그럴 즈음 태숙이 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 봉당에서 싸리빗자루로 눈을 터시면서 "건우 왔냐?. 이래 가지고 어디 내려갈 수 있겠냐?. 오늘은 아버지 하고 같이 자고 눈 치워지면 내려가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늦도록 아버지 방에서 태숙의 재롱에 함박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만이 짙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참으로 꿈같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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