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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西南北 女人天下

국민학교 동창 여식애 일곱 명

by 정건우

東西南北 女人天下 / 정건우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 3리 4반>. 열여섯 살까지 살았던 내 고향에서의 마지막 주소라네. 서천에 잠긴 사명산 능선을 따라 박수근이 바라보던 달빛이 떠가는 그림 같은 동네. 바람도 호젓한 길가에서 내 국민학교 동창 여식애 일곱 명이, 반경 삼십 미터 안쪽에서 나를 에워싸고 숨어 있었다네. 아아, 나는 내색도 않고 분 냄새, 기초화장품 향기에 코가 비뚤어진 채 그 세월의 골목길을 비집고 다녔네.


집 앞쪽에 미정이가 살았네. 신작로 건너 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 무슨 펌프가 밥 먹듯이 고장이 났다는지 갸는, 사흘이 멀다 하고 우리 집 펌프로 물을 퍼갔네. 펌프질 소리가 흔전 만전 내 돌리는 호박엿 같았네. 사방팔방으로 물방울을 냅다 튀겨댔었네. 창문 너머로 아주 가끔 힐끔거렸네. 저 옆태가 뭘 보고 열여섯이야?. 펌프질에 수그러지는 허리 아래가 터질 듯이 팽팽했네. 나는 거듭거듭 정신이 아득했었네. 얼굴 똑바로 본 것이 일 년에 열댓 번이나 됐을까나?.


집 왼쪽엔 경순이가 붙어살았네. 담장으로 고개를 빼면 내려 보이던 한 짝의 잉크색 운동화. 나는 왠지 볼 때마다 가슴이 짠했네. 쟈는 하루에 몇 마디나 뱉으며 살까?. 덩치는 산 만한 게 목소리는 모기 같았네. 뭘 물어봐도 웃기만 하니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갸는 또 사흘이 멀다 하고 아버지 술주정에 우는 게 일이었네. 뒤꼍으로 돌아가면 꼭 부엌에서 울었네. “경순아, 경순아, 밥은 먹었냐?”그게 가당한 말이던가?. “미정이 한 테나 가 보던가”이런 젠장할.


부향이는 오른쪽에 살았네. 수돗가 건넌방에서 내 방귀소리 꽤나 들었을 것이네. 툇마루에서 어정댈 때마다 그쪽 쪽문이 달그락 거렸네. 날 훔쳐보는 걸 내가 아는 데도 그랬다네. 난쟁이 똥자루라고 놀려도 밸도 없는지 낯빛이 멀쩡했던 잉어집 맏딸. 죽기 직전의 잉어 배를 직접 가르고, 지느러미를 떼고, 양동이 째로 들고 와서는 가타부타 말없이 놓고 가는 뒷모습이 참으로 찜맛이 없었네. 맡겨놓은 듯이 빌려 간 삼중당 문고는 한 권도 돌려받지 못했다네.


집 뒤쪽에 한 집 아래 연옥이가 살았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계집애. 기럭지가 껑충한데도 달음박질 하나는 기가 막혔네. 가무잡잡한 피부가 섹시하다는 소리를 중 3 때부터 대놓고 들었던 여식애. 츄리닝이던 태권도복이던 걸치는 태가 기깔났던 이 패숑. 이사 가던 날 향기 나는 손수건을 쥐어 주고 울던 우리 연옥이. 그녀 집 뒤쪽에 정애가 살았네. 또 그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한 집 건너에 순복이와 상윤이가 살았다네. 인물이 모두 삼삼하고 키 크고 고고춤을 희한하게 꺾어 추며 잘 나가던 애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뚜렷한 데다, 외청룡 외백호까지 환포하는 용진혈적 천하 길지에 내가 들어앉았던 형국이었네. 물형론이건 이기론이건 세상의 어느 풍수가 이보다 나을 수 없었네. 수구처는 미정이가 물길을 관쇄하고 에워싼 사신사는 빈틈없이 유정하네. 이들의 50년 음덕이 발복 해서 작년에 내가 중환자실에서 살았나 보네. 올 추석에 수소문하고 이리저리 알아보았네. 일곱 중 사별한 이가 둘, 이혼한 이가 셋, 애초부터 혼자였던 게 또 둘이라 하네. 아아, 지금은 홀로 남은 이들의 상한 날개에 싸여 나는 고즈넉했으니, 이 빚을 언제 다 갚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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