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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가장 오래 전의 나

by 정건우

그림자놀이 / 정건우


나와 촛불 사이로 눈물 나는 것들이 지나간다

내가 내 생의 들창에 드리우고 싶었던 이름들이

안부를 묻는 입모양으로 말끔한 눈망울로

다시 온다는 표정으로 지나가는데

스무 살 뻣뻣한 아버지와 육십 년 전 하늘과

말하기 전에 웃던 소녀와 관자놀이를 쏘고 죽은 친구와

발이 이쁜 장모의 자궁에서 팔딱이는 아내

아리아리한 내 오랜 인연들이 오목렌즈처럼

또렷하게 내 앞을 지나간다

눈앞에 벽면에 칙칙하게 뭔가가 타난다

만져지던 것들이 쨍하던 것들이

내 신경과 뇌수 척수 피 속에서 펄펄 뛰던 것들이

한데 섞이면 저런 빛깔이 되나?

몸을 흡수한 마음의 테두리는 저렇게 구토하듯이

통곡하듯이 마냥 일렁이나?

다가가면 유령처럼 는 형체가 나를 흔들고

멀어질수록 명료한 테두리로 오롯이 비치는

가장 오래 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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