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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약 우루클레스

먹자마자 어마무시한 힘이 3분간 치솟는 약

by 정건우

기적의 약 우루클레스 / 정건우

77년 중 3 때, 가을맞이 전 학년 반 대항 체육대회가 열렸었다. 학년과 관계없이 4개 종목을 풀리그로 겨뤄 최종 우승을 추려내는 다소 언바란스한 대회였다. 1,000미터 계주, 축구, 줄다리기, 씨름 등 4 종목이었다. 각 학년 4반 체제였으니 총 12팀이 막무가내로 겨루는 대회인 셈이었다. 강원도 양구 산골 촌 동네에서는 딱히 즐길 거리가 없었던 관계로 무료한 어른들이 제법 많이 들 오셔서 경기를 구경하셨다. 당시 학교에서는 우열반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전교 1등에서 60등 까지를 한 반에 몰아넣고 탈락자와 신규 진입자를 반 이동시키는 과격한 제도였다. 1학년은 1반, 2학년이 2반, 3학년은 3반이었다.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선생들은 서로 수군대었던 모양이었다. 과연 공부 좀 한다는 3반의 체육 성적은 어떨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3반이었는데, 학교 씨름부 소속이었으니 당연히 씨름 선수로 출전하였다. 우리 담임은 국어를 담당하던 여선생이었는데 승부욕이 엄청난 열혈 전사였다. 아침 조회시간에 대뜸 하시는 말씀이,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가 빚어지는 법이고, 문명한 두뇌와 야만의 육체를 가지는 것이야 말로 고추를 달고 사는 남자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덕목이라는 것이었다. 고추라는 말을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발설하는 담임의 기세에 경악한 우리는 죽기를 맹세하였다. “우승 못하면 전부 죽을 줄 알아” 키만 멀쑥할 뿐 평소에 농담도 별로 없었던 담임이 살벌한 왈가닥임을 확인한 선수들은 아연 긴장하며, 따로 작전을 짜는 둥 어쩐 둥 상당한 부담을 느끼며 심란해하였다. 그런 우리의 등을 일일이 탁탁 치며 담임은 긴장들 풀라며 웃는 것이었다.

나는 7명의 씨름 선수 중 7번에 배정되어 일종의 게임 마스터 역할을 맡았다. 물론 그 순서를 매긴 장본인도 담임이었다. 씨름 예선에 나설 필요도 없이 3반 친구들이 잘해서 나는 심심해하였는데, 어째 갈수록 경기 양상이 팽팽해지더니 급기야 3학년 4반과 경기 전체 2 대 2 동률로 접어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최종 승부가 씨름에서 결정 나게 되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전 학생과 선생들, 구경꾼들이 전부 씨름판으로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담임은 응원 단장을 불러 “아라치 아라초 아라치치초초초”라는 문구를 적어 주며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라고 명령하였고, 뜻도 모르는 그 암호 같은 구호를 씨름판이 떠나가도록 불러대는 애들 등쌀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씨름판은 결국 흥분의 도가니로 펄펄 끓어올랐다.

3, 4반에 씨름꾼이 각각 2명씩 있어서 대진은 팽팽해 보였다. 담임은 기선 제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1번에게 엄청난 응원을 보내라고 독려하며 씨름판 분위기를 쥐락펴락하였다. 어느덧 대회는 동네잔치로 변해 구경꾼들도 박수로 환호하며 열띤 분위기에 들뜨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박수를 치며 웃고 계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기분이 묘해지며 힘이 났다. 경기는 머피의 법칙처럼 흘러 결국 3 대 3이 되었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는 180센티의 거인과 내가 승부를 결정짓는 7번째 선수로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싸운 끝에 또 영화처럼 1 1이 되자, 씨름판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그때, 담임이 지쳐 쉬고 있는 내게로 와서 약 한 알과 드링크 음료 한 병을 감추듯이 주시면서 내 귀에 대고 소곤거리시는 것이었다.

“이거 우루클레스라는 약인데, 우루과이 거야. 먹자마자 어마무시한 힘이 3분간 치솟는 약이야. 아무도 모르게 구한 거니까 먹고 저 놈 죽여버려” 나는 숨이 멎을 정도로 긴장하며 게눈 감추듯 약을 털어 넣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얼굴이 화끈거리며 알 수 없는 힘이 종아리로부터 올라오는 강력한 느낌이 왔다. 마지막 판에서 거인이 힘으로 나를 밀어붙이자마자 번개처럼 몸을 왼쪽으로 틀며 녀석의 앞무릎을 치며 죽을힘으로 허리를 잡아당기자 모래를 한가득 입에 문 채 녀석은 나동그라졌다. 담임은 실성한 사람처럼 날뛰었고, 씨름판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친구들은 나를 무등 태우고 아라초를 외치며 교실로 향했다. 왁자지껄한 교실에서 숨을 고르던 나는 그 약이 도대체 어떤 약인데 엄청난 힘이 나느냐고 담임께 물었다. 담임은 여전히 흥분된 목소리로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거. 원비디하고 우루사야. 헤라클레스도 그거 먹으면 힘이 날걸?” 나는 슬프도록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우루클레스라고 구라 치셨구나. 잠시 후 실실 웃음이 나와 한참을 혼자 책상을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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