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나 해구 보다도 깊은 침묵의 적요
바닷가 동네 카페 <Cafe-Jun> / 정건우
카페에 들어섰을 때, 갓 볶은 원두 향기가 뭉근하게 목덜미를 감싸는 거야.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멀게 가깝게 풍겨오는 향기 속에 몸을 담갔지. 손톱 밑에도 타는 듯이 깊고 그윽한 향기가 배었을 것이네. “여전하시네요” 로스팅 룸에서 나오던 강 사장이 성대를 틀어막은 채 들릴 듯 말 듯 한 입모양으로 수그리며 말하더라고. 이건 뭐지?. 직감적으로 발동한 촉이 홀 안쪽으로 시선을 잡아끌더라고. 서른 중반이나 됐을까나?. 한 여인이 텅 빈 창가에 앉아 있었네.
“누구?” 눈짓으로 물어보았지. 강 사장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 양팔을 벌리고 검지와 중지를 잠시 세우더니, 자신의 손목시계를 두 번 찍는 거야. 두 시간째 저러고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잠시 눈 감고 고개를 저으며 향기를 불러들였어. “에티오피아 원둡니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하는 강 사장에게 손목으로 X자를 그려 보였네. 침묵을 유지하자는 뜻이지. 그의 이런 노심초사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기로 나도 그의 심리에 동승해야만 했네. 카운터 건너편에 가서 조용히 앉았네.
초저녁의 바닷가는 까치놀에서 번지는 붉은 기운으로 온통 아릿아릿하였지. 방파제 테트라포트와 내항에 정박해 있는 요트의 주뼛한 돛대들 마저 물들이며 다가오던 노을이, 급기야 여인이 기댄 유리창에서 일렁이더라고. 첼로처럼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댄 女人. 오른 다리를 꼰 채 미동도 없이 어느 한 곳을 조준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네. 각도로 보아 방파제 끝이야. 테트라포트 위에서 겅중거리며 놀던 젊은 연인이 등대에 기대어 키스하는 듯이 아른거리네. 저렇게 지나가는 그림이 두 시간째라.
고동색 원형 탁자에 카페라테로 보이는 찻잔 두 개가 말끔하였네. 이글거리던 노을이 드디어 어둑어둑한 그림자를 드리울 때까지도 오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 드립 커피를 조심조심 내 오는 강 사장의 손목과, 달그락 소리도 못 내는 내 조바심의 출처는 어디일까?. 젊은 아내도 저토록 내 속을 태우며 일 년 만에 찻 잔을 비웠었지. 마리아나 해구 보다도 깊은 침묵의 적요. 이 시간 이후, 더는 주문을 받고 싶지 않은 바닷가 동네 카페 <Cafe-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