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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You Ever Seen the Rain.

묻고 싶어, 넌 그런 비를 본 적이 있냐?.

by 정건우

Have You Ever Seen the Rain / 정건우

제목의 문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록밴드 C.C.R이 71년 발표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그들의 대표 곡명이다. 이 불세출의 노래를 쫑긋하게 들은 것은 76년 중 2 때, AFKN(주한미군방송)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다소 거칠고 단순 호방한 리듬과 멜로디의 팝송에 푹 빠져들고 있던 때였다. C.C.R이라는 밴드명이 완전히 귀에 들어와 박힐 무렵, 그저 오가다 들은 그들의 많은 히트곡 중에서 특히 저 노래가 내 가슴을 울렸다. 그날 밤 숨죽여 전곡을 듣고 나서 나는 그 단순하고 신명 나는 멜로디를 시종일관 감싸고 있는 알 수 없는 슬픔의 밑바탕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노래한 존 포거티의 정제된 야성의 축축함을 넘어서는 마성 같은 슬픔은, 갈망의 방향으로 나를 내몰아버렸다. 음악은 물론 문화 인프라가 거지 같던 그때, 나는 기타를 잘 치는 동네 대학생 형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궁금증을 해소했었는데, C.C.R 노래는 가사를 유념해서 들으라고 거듭거듭 형이 훈수를 했다.

Have You Ever Seen the Rain. 무엇 무엇해본 적 있느냐고 묻는 대표적 현재완료 시제의 의문문 형식 문장이다. Have you ever + P.P(과거분사)이니, “넌 그런 비를 본 적이 있냐?”라고 묻는 말일테다. 그런 비를 본 적이 있냐니 무슨 말인가?. 나는 몇 날 며칠 또 형을 졸라 정확한 가사를 알려달라고 떼를 써서 귀하게 받아 들고는, 몇 번이나 필사와 해석을 반복하였다. 오래전 누군가 말했단다. 폭풍이 오기 전엔 고요함이 있다고. 그리하여 맑은 날에도 비가 내릴 거라고. 그런데 묻고 싶어. 넌 그런 비를 본 적이 있냐?. 어제도 그 이전의 날들도 태양은 차갑고 비는 거셌지. 난 알고 있어. 내 평생 내내 그런 식이었지. 아마 영원히 그렇게 계속되겠지. 원을 그리듯이 빠르고 느리게. 멈추기 힘들 거야. 묻고 싶어. 넌 그런 비를 본 적이 있냐?.

알 듯 모를 듯 등짝을 후려치는 가사 내용에 존 포거티의 성대가 갈라지는 듯한 음색이 영혼처럼 버무려져 빚어낸 슬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깜냥 것 공부한 내용과 살뜰했던 형의 설명을 토대로 C.C.R을 해석해 보면, 그들은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을 노래로 빗대어 고발한 소위 반전 밴드라는 공공연한 평가가 사실이다. 또 다른 대표곡 “Who will stop the rain”을 보더라도 맥락이 같다. 베트남 전쟁에 징집된 미국 청년들에게 쏟아지는 혼란, 고통, 죽음, 그리고 사회 분열과 정치적 갈등을 내리는 비에 빗댄 것은 타당하고도 절묘한 것이라 하겠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의 미국 사회는 전쟁 찬반으로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고, 존 포거티 또한 징집을 피하려 버지니아 주방위군에 자원입대한 경험도 있다 하니 그 반전 의식이 정서적 배경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젊은 나는 존 포거티의 날카로운 보컬과 기막힌 기타 연주,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가사에 실감 나게 호응한 뛰어난 작곡 능력에 반했다. 그리하여 C.C.R 해체 후 솔로로 전향한 후에도 최애의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그를 사랑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의 작곡에 관한 본인의 고백적인 설명을 듣게 되었다. 69년 전설적이라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출연한 C.C.R은 쏟아지는 비 때문에 공연을 망쳤고, 폭동 직전까지 간 혼란한 상황 속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처럼 답답한 감정을 노래로 표현했다는 고백이었다. 또, 밴드 내부의 심화되던 갈등과 불화를 비에 빗대었다고도 했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음악적 방향성과 주도권 문제로, 특히 그의 형인 톰 포거티와의 극렬한 대립이 멤버들의 분열을 가속화하여 결국 72년에 밴드를 해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늘 벽이 있다고 한다. 개인과 개인 간의 간극과 공허를 상징하는 말이다. 아마도 그 질료는 '시기와 질투, 이기심'이 상당 부분일 것이라 생각한다. 존 포거티에 집중된 음악적 주도권과 그 쏠림에서 파생하는 영향성이 다른 멤버들, 특히 그의 형이 맞닥뜨렸을 한계 상황을 폭발케 하여 맞이한 파국처럼, 좁히기 힘든 인간의 간극과 괴리의 고통은, 쏟아지는 비처럼 처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표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긴 노래지만 아직도 이 노래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이유는 그런 이면의 신명 나는 슬픔의 역설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필연적으로 찾아올 불행과 슬픔을 예감하는 한 인간의 마치 시적 반전 같은 직관. 그래서 그는 쓸쓸하고 체념하는 듯한 느낌의 목소리로 노래한 것일 테다. 인간 갈등의 본연은 바닥에서 질척이는 빗물에 적셔지는 바짓단처럼 단순함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형과 화해하지 못한 게 인생 최대의 후회라는 소회를 남긴 이재명 대통령의 가슴에 쏟아지는 빗줄기도 다르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비 오는 늦은 저녁, 믹스커피 한 잔에도 잘 어울리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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