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수지검사 후
글쓰기와 전립선비대증 / 정건우
- 직장수지검사 후
아, 제기랄, 또 그 빌어먹을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 간이침대 위에서 엉덩이를 까고, 두 무릎을 끌어다 가슴에 붙이고, 옆으로 누워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황망한 아랫도리를 유지하고 있으면 이 과장이 흰 라텍스 장갑을 끼고 들어올 것이다. 내 팔자가 얼마나 사납길래 이런 꼴을 하고 잠잠하게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검사실의 괴괴한 적막이 깊어질수록 내 자괴감은 한심한 울분으로 무거워져만 갔다. 13개월 만에 다시 하는 검사다. 전립선염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맨 지 1년 후, 다시 전립선 상태를 살피는 검사다. 1년 전 내 전립선 크기는 80g으로 정상치의 4배라고 했다. “어마무시하네요” 모니터를 쳐다보던 이 과장이 그렇게 탄식했었다. 어마무시하다니?. “그럼 어떻게 되오?” 쫄아서 물어보니 “수술을 고려해야 할 크깁니다” “헐, 그 정도야?” 낙담도 그런 낙담이 없었다.
내 항문으로 들어올 초음파 탐촉자를 맥없이 바라보고 있는 데 이 과장이 들어왔다. “아이고 아버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덕분에요. 3개월 만인데 뭘” 이런, 이런, 똥구멍 들이대고 나누는 인사라니. 참으로 해괴하지만 반갑긴 하다. 이 과장을 가르친 의대 교수가 내 중학교 동기다. 그런 연고로 나를 아버님이라고 호칭하며 딴에 잘한다고 애쓰는 모양이 고마웠다. “어디 보자” 망설임 없이 이 과장의 손가락이 항문으로 들어왔다. 이런 난감함 때문에 전립선비대증으로 그리 고생을 하고 있다는 이 과장의 부친도 이 검사만큼은 안 받는다고 했다. “탐촉자 들어갑니다” 젤을 잔뜩 묻혔다고 하는 데도 이번 검사는 별스럽게 불편했다. 이 과장은 탐촉자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직장 바깥에 붙어 있다는 전립선에 음파를 쏘는 모양인데 이번엔 아무 말도 없는 것이 어째 이상했다.
뒤처리를 하고 이 과장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스멀스멀 불안했다. 이 과장은 PC 마우스를 연실 클릭하며 스캔 화면에 대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버님, 도대체 그간 뭘 어떻게 하셨어요?”라며 고개를 홱 돌리고 묻는 것이었다. “응?, 무얼 어떡하다니?. 난 과장께서 처방해 준 약을 하루도 안 빼고 먹기만 했을 뿐이오” “아니, 그런 거 말고요. 40g으로 줄었어요. 믿을 수 없습니다” 라며 그가 흥분하였다. 40g이면 원래 크기의 50%가 줄어든 엄청난 성과다. 약 복용 1년 정도에서 대략 30% 정도의 감소를 기대한다 했으므로 이 과장이 흥분할만하였다. 학술지에 기고하고 싶은 충동까지 생길 정도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정상치의 2배 크기의 전립선을 매달고 있으니 앞으로도 험한 길을 나는 가야 한다. 이 과장이 진정으로 기뻐해 주었다.
전립선비대증으로 발생하는 배뇨곤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소변본 지 한 시간도 안돼 다시 보게 만들고 또 요도에 찝찝하게 남는 불쾌한 이물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지렁이가 요도와 방광 속에서 꿈틀댄다고나 할까?. 끊임없이 찔끔찔끔 새는 오줌은 생활의 질을 나락으로 밀어버린다. 중환자실 퇴원 후 나는 그 끔찍했던 하초의 고통에서 탈피하고자 몸부림을 쳤다. 처방약의 성실한 복용은 말할 것도 없고, 혈압, 당뇨, 체중, 고지혈 관리와 금주, 식단 조절 등 각종 자료를 섭렵하며 자구책을 찾아 실천했다. 패혈 후유증으로 망가진 심장기능 향상의 보조조치로 부드러운 백사장 맨발 걷기, 뒤꿈치 들기, 맨몸 스쿼트, 전립선 운동 등 할 수 있는 운동은 무리하지 않은 범위에서 1년간 충실하게 실행하였다. 내 설명을 듣고 이 과장은 그런 운동과 식이요법이 강력한 시너지로 전립선 대폭 축소에 일조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립선비대증은 남성의 일반적 노화현상에 기인한단다. 그러나 주원인은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전립선 성장을 촉진시키는 DHT(Dihydrotestosterone)로 전환케 하는 5 알파환원효소의 증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비대해진 전립선을 축소시키기 위해서는 5 알파환원효소의 증식을 억제하고 전립선의 혈액순환을 촉진케 하여 활성화시키는 방법이 유효하다는 것이며, 그것이 대체로 위에 설명한 내용들이다. 대략 40대 이후의 남성들은 거의 필연으로 전립선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남성의 잘못이 아닌 태생적 한계상황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따라서 장년의 남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사전에 충분히 숙지하여 예방하는 방법 이외에는 비대증에 대처하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
브런치에 글쓰기가 내 생활의 일부가 된 요즈음, 나는 내가 혹독하게 앓았던 전립선비대 증세가 글쓰기와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 관심 없이 방치한 결과로 목숨을 위협받은 것처럼, 글쓰기도 아무 노력 없이 방치해 두면 괴사 하는 세포와 진배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인문학적 글쓰기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질료는 아마도 감성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문학적 소양의 바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두면 결코 증식되지 않는다. 끝없는 의심증과 궁금증으로 뻗어가는 상상과 사유의 공간에서 지속되는 독서와 습작을 통해 감성은 풍요로워지고 문학적 소양은 배양된다. 가만히 두면 테스토스테론을 DHT로 전환케 하는 5 알파환원효소처럼,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피폐해져서 마침내 괴사 하는 것이 감성이며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것이다. 운동으로 근력을 키우듯, 무어라도 구체적으로 해서 키워야 하는 것이 글쓰기의 바탕임을 혹독하게 아파본 후에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