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년과 장군將軍

윤필용 장군을 추억함

by 정건우

시골 소년과 장군將軍 / 정건우

달리 특별한 충동이 있어 그런 건 아니었다. 이 나이에 낚시광이란 소리도 우스운 것이었다. 이따금 그저 혼자 있는 것이 맘에 편하고 좋았던 것이다. 열여섯 살, 중 3으로 굵어진 머리를 아버지는 억압하려 하지 않으셨다. 뱀 조심하고, 호수 가까이에 텐트 치지 말고, 물고랑을 확실하게 파라고 말씀하셨을 뿐이었다. 코펠과 버너, 쌀 몇 줌과 약간의 라면 등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 군용 텐트 배낭에 욱여넣었다. 밤늦도록 대나무 낚싯대를 만졌다.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고 닦으며 찰랑이는 파로호의 짙푸른 물결을 생각했다. 산 그림자가 유달리도 깊은 고대리 안쪽에 자리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름방학 시작 다음 날, 양구 방산면으로 가는 첫차를 탔다. 삼십 명 가까운 승객 중에 절반이 군인이었다. 내가 군용 텐트를 메고 있는 것이 특이해 보였던지 병사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매로 쳐다보았다.

고대리는 파로호 상류 부근에 있는 고즈넉한 마을이다. 막내 고모네 집을 지나서 나오는 첫 동네라 갈 때마다 고모의 목소리가 귀에 걸리는 곳이다. 파로호는 양구와 화천에 걸친 인공호수로 1944년 화천댐 축조로 생겼단다. 한국전쟁 때, 이곳에 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한 곳이라 하여 화천호라는 당초 이름을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 개명했다고 한다. 수 만 구의 유해가 호수 바닥의 뻘에 잠겨있는 곳일 테지만, 세월은 그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짙은 산 그림자를 물 위에 띄울 뿐이었다. 물결이 감아도는 한적한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물가에서 비교적 떨어진 구릉에 텐트를 쳤다. 아버지 당부대로 물꼬를 확실하게 내고, 비막이 천막까지 단단히 설치하였다. 세 칸 낚싯대를 중앙에 두고, 좌우로 두 칸반 짜리를 걸었다. 에메랄드 색 물빛에 찌 세 개가 꿈결인 듯 오롯하니 이뻤다.

마을에서 세 마장 정도 떨어진 외진 곳이라서 그런지 낚시꾼은 없었다. 정오쯤 되자 한 명의 낚시꾼이 오육십 미터 우측의 곶머리에 자리했을 뿐이었다. 행상으로 보아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세 칸이 넘어 보이는 낚싯대 한 대만을 걸어 놓고 연실 빈 챔질을 하였는데 그 솜씨가 예사스럽지 않았다. 밥으로 집어를 하고 있는 듯했다. 비교적 훤칠한 체구에서 그려지는 동작이 시원시원하였다. 나는 가끔 그를 힐끔 거렸는데, 그는 챔질을 끝내면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팔꿈치를 무릎에 박은 채 양손으로 턱을 괴곤 하였다. 무슨 생각을 저리 골똘하게 하는 것일까?. 저런 자세로 찌를 바라본다는 것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떡밥과 지렁이 짝밥 차림으로 오후 세시 경까지 씨알 좋은 준치급 토종 붕어를 열댓 마리 정도 낚았다. 가져갈 것은 아니고 그저 고기망에 넣어 그 소란함을 즐기는 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그야말로 들이붓듯이 퍼부었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돌풍이 불어닥치며 비가림 천막을 뽑아버릴 것처럼 흔들어 댔다. 깊게 판 물고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아버지 말씀대로 텐트의 고정핀을 단단하게 때려 박고 물꼬를 확실하게 낸 덕을 톡톡하게 본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아버지가 크게 느껴졌다. 잠시 비가 주춤하는 사이 나가보았다. 낚싯대가 거의 잠길 정도로 수위가 올라있었다. 고기 망태의 붕어는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곶머리의 남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라면으로 늦은 저녁을 때웠다. 젖은 옷을 짜서 대충 널고 랜턴 불로 책을 보다가 간간한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비는 새벽 늦게 주섬주섬 그쳤다. 아침 식사 후 낚싯대를 손보고 있는데, 곶머리 남자가 이리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비교적 훤칠한 키에 구레나룻이 뚜렷한 것이 매우 강인한 인상이었다.

밤새 춥지 않았냐고 그가 물었다. 자상하지만 단호한 음성이 강력한 느낌을 주었다. 몇 학년이냐고 묻고, 어제 보니 낚시를 잘하던데 잡은 고기를 전부 놓쳐서 어떡하냐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이었다. 애당초 잡은 고기는 가져갈 생각이 없었다고 하자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그랬었나?, 하하하, 중 3 학생이 진짜 낚시꾼이구먼”하며 정말로 감탄하듯이 웃는 것이었다. 나는 덩달아 기분이 좋았고 그의 묘한 분위기가 참으로 특이하다고 생각하였다. 미끼는 무얼 쓰느냐, 왜 낚시를 좋아하게 됐느냐, 파로호 지명의 유래를 아느냐는 둥 그는 말이 그리운 사람처럼 내 옆에 앉아 몇 가지를 물어왔고 나는 즐겁게 대답해 주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바람이 불 것 같으니 조황은 틀렸다며 언제 가느냐고 물으며 그가 일어섰다. 내일 오후에 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의 말대로 이내 바람이 불었다. 맞바람 때문에 낚싯대 던지기가 어려워 나는 지렁이 대신 떡밥을 무겁게 달아 대응했지만 입질은 없었다. 곶머리의 그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차양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턱을 괸 모습으로 잠잠하였다. 입질처럼 까딱이는 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찌 사이를 왕래하였다. 바람은 산 그림자를 흩트렸고 물결이 치는 대로 찌는 흔들렸다. 고교 진학 문제, 싸웠던 친구와의 화해 문제, 갑자기 도진 아버지 허리의 통증, 심란하게 만드는 미정이의 뜻 모를 미소, 공부에 영 관심이 없는 동생 등등 골똘한 생각에 보이던 찌도 점점 사라져 갔다. 오후 늦게까지 나는 아무 대책 없이 바람으로 몸을 얼렸다. 내가 일어나기 바로 전에 그도 자리를 털었다. 대충 밥을 지어 저녁을 때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호수의 밤은 살벌하도록 고요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바람이 불어 나는 일찌감치 텐트를 정리하였다. 우측 만치에서 가 오고 있었는데, 오늘은 낚시채비가 없었다. 감기 걸리기 쉬운 날씨라 서둘러 철수하기를 잘했다며 자기도 오늘은 출타를 한다고 했다. 닷새 만의 나들이라고 하더니 돌연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네는 것이었다. 책이라도 사서 보라는 것이다. 내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자 그가 내 어깨를 치며 괜찮다고 한다. 혹시 존함을 여쭈어 봐도 괜찮냐고 물으니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낮게 말하였다. “윤필용이라 해”. 윤필용, 육군 소장 출신의 전 수도방위사령관. 경쟁자 김재규를 날린 위세가 시퍼랬지만 박정희 대통령 관련 실언으로 한순간에 몰락한 군부의 실세 장군. 그와 관련한 상세 전력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턱을 괸 채로 골똘했던 그의 등이 참으로 고독했을 거라는 생각도 그때 스쳐 지나가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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