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을 구우며

by 정건우

/ 정건우
- 크루아상을 구우며

버터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질감이 이렇게 생소할 수 있단 말인가?. 밀대질을 하며 나는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반죽과 반죽 사이에서 일정한 층을 이루며 반죽과 같이 밀려야 할 버터가 사방으로 뭉그러지는 이 느낌. 결과는 불문가지일 터이다. 버터가 반죽에 흡수되거나, 제대로 층을 이루지 못하고 유리되어 결을 만들기는 글렀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시간 가까이 저온발효시킨 재료가 아깝기 때문이다. 맥이 탁 풀린다. 급하게 구매한 버터가 원인이었다. 애용하던 매장이 휴장이라 어쩔 수 없이 동네 마트에서 산 버터다. 3년 전에도 한번 실패했던 버터라 그 기억을 복기하며 세심하게 다루었지만, 경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투입 타이밍을 놓쳤다.


크루아상은 판상의 밀가루 반죽 위에 역시 판상의 버터를 올리고 겹겹이 접어 반죽-버터-반죽이 교차되는 층상 구조를 만든 뒤, 삼각형으로 잘라 말아 구운 초승달 모양의 빵이다. 페이스트리 기법으로 만드는 특성상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가볍고 지방분이 많고 다소 짭짤해 더러 아침 식사 대용으로 이용한다. 아내의 아침 수고를 덜고, 새로운 문화 도발을 만끽하자는 의도로 나름 열정적으로 크루아상을 만들어 온지도 6년 째다. 온도에 민감한 버터를 다루는 일이라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재료의 계량, 작업장 및 반죽의 온도, 버터 투입 조건 등이 잘 맞으면 밀대 작업에서 반죽과 버터가 어우러지는 결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연유로 나는 한 종류의 버터만 애용해 왔다.


오븐 안에서 2차 발효 중인 반죽은 외견상 완벽했다. 반투명 빛깔이 앙증맞게 뽀얗고, 부피도 두 배이상 부풀어 있다. 와블링에도 적당하게 찰랑이며 어서 빨리 구워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3절 접기를 세 번하고, 냉동고에 25분씩 네 번을 드나들며 속을 얼렸던 반죽이다. 반죽의 겉을 세심하게 다듬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외형이다. 그러나 손 끝에서 느껴지는 결의 괴리 현상은 어찌할 수 없다. 구우면 반드시 뒤틀려 있을 외형일 것이다. 반죽에 계란물을 바르며 나는 문득 아내를 생각했다. 그녀를 기쁘게 해 주자고 빵을 만들었지만, 정작 난 아내 마음의 결을 제대로 매만져 왔는가?. 반죽을 다룰 때마다 늘 새롭게 설레던 초심을 아내에게도 일상으로 나누어 주었던가?.


내가 크루아상 만들기에 푹 빠진 이유는, 재료와 제법의 필요충분조건이 마련한 결과물의 개연성 때문이다. 부대조건의 완벽성과 내 공력의 세심함이 빚어낸 작품은 변함없이 만족스러웠다. 그 바탕엔 늘 처음처럼 반죽을 대하는 나의 설렘이 있었다. 맨 처음 크루아상을 만드는 심정으로 나는 반죽과 버터의 결을 매만졌다. 아내와 산지도 어언 37년, 13,500일을 훌쩍 넘긴 세월이다. 수없는 날들 동안 아내는 항상 새로웠을 것인데, 과연 나는 설렘으로 그 윤슬처럼 일렁거렸을 마음의 결을 제대로 보듬어 주었던가?. 온도와 시간을 지켜 빵을 구웠지만, 역시나 뒤틀린 모양이다. 여전히 맛있다며 아내는 빵을 먹는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뭉개진 결을 따라 사라진 올곧은 맛과 향기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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