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장명부張明夫, 그를 추억하며

by 정건우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 정건우

落ち葉は秋風を恨まない(오치바와 아키카제오 우라마나이) -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뭍 생명의 생의 운용과 자연의 섭리를 함께 이야기할 때, 문학적으로 아름답고 절대 수긍으로 압도되는 문장이 이보다 나은 것을 찾기 어렵다. 목숨을 다한 나뭇이파리가 떨어지는 것은 가을바람 때문이 아니라, 정연하게 순환하는 생명의 섭리라는 관점의 말이다. 수긍 정도가 아니라 이 문장 앞에선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만큼 강렬한 일종의 전율이 인다. 일본의 고대 시가詩歌 중 한 구절이라는 말이 있고, 가츠 신타로가 주연했던 영화 ‘자토이치’에 등장한 표현이라고도 하는 문장이다. 내가 이 문장을 처음 접한 것은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의 재일동포 투수 장명부의 사망 기사에서였다. 당시 내게 무척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1982년 3월 27일 시작된 프로야구는 혼란과 격동 속에서 출범한 제5공화국이, 국민의 관심과 시선을 정치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지게 하기 위한 이른바 우민화정책으로 서둘러 탄생시켰다는 중론이 있었는데, 어쩌면 나는 그 정책의 열렬한 수혜자인지도 몰랐다. 나는 펄펄 끓던 청춘의 에너지 한쪽을, 꼴찌의 대명사인 삼미 슈퍼스타즈 팀에 갖다 바쳤으니 말이다. 그 팀을 응원한 이유는 단 하나, 인천, 경기, 강원을 연고로 한 팀이기 때문이었다. 강원도 양구 출신인 내가 달리 고민하고 말 것도 없이 품어 안은 운명적인 팀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삼미를 컬트적인 심정으로 응원하였다. 3월 28일 대구 첫 경기에서 우승후보 삼성 라이온즈를 5대 3으로 이겼을 때의 감격은 44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첫 경기 승리로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인천, 경기, 강원에 뿌린 삼미는 창단 원년에 15승 65패로 결국 꼴찌를 했다. 빈약한 자원이 만들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이긴 했어도 결과는 잔혹하리 만큼 처참했다. “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필수 불가결한 구체의 절심함을 구단과 팬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팀은 몇몇 타자와 투수를 보강했는데 그중 압권이 재일동포 투수 장명부의 영입이었다. 당시 33세의 고령으로 한물간 투수라는 소리를 듣던 장명부는 그 특유의 너구리 같은 심리 투구로 혼자 30승을 일궈내는 기적을 발휘, 원년 꼴찌를 이듬해 3위에 올리는 혁혁한 개인기를 연출한다. 이후 부진했던 그는 필로폰 사용 등으로 영구 제명을 당한다.

2005년 봄,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일본의 마작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 사망하였고, 벽에 위의 문장이 쓰여있었다고 한다. 향년 55세의 거칠고 강렬했던 일생이었다. 비록 짧고 아쉽게 한국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자기 관리에도 실패했지만,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불멸의 대기록을 남긴 주인공의 마지막은 경악할 정도로 초라했다. 야구에 대한 미련과 애정만큼은 버릴 수 없었던지 청각장애인 야구팀의 코치로 무료봉사를 했다던 장명부. 그의 친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끝내 말년의 쓸쓸함 속에 자신의 과거와 열정을 그리워하면서도 이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는 말을 남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공감하는 심정이다. 그의 카이로스는 비록 짧았지만 기억은 오래갈 것이다. 가슴에 일획을 긋는 문장과 함께 새삼 그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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