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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Feb 01. 2021

R. I. P 정이

2021년 2월 1일


밤사이 비가 촉촉이 내리고 마치 봄이 온 듯 날씨도 포근해 오래간만에 동산에 오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길가 가로수 벚나무에 꽃망울이 올라왔나 싶어 한 가지 끌어당겨 보았지만 아직이다. 그래, 오늘은 겨우 2월 첫날인 걸... 성급하기도 하지..


길가에서 산 쪽으로 넘어가는 월문천 다리를 거의 건널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큰언니다. 평소 답지 않게 뜸을 들이며 정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엄마가 나한테 차마 알리지 못하고 언니한테 먼저 말한 것이다. 얼마 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갈 줄이야. 정이가 떠났구나... 당황스러웠지만, 가던 길을 멈출 수 없어 눈 앞 계단을 올라 낙엽들이 적당히 폭신해진 산 길을 걸었다. 대부분 개는 15년 정도 산다는데 왜 정이는 10년 만에 떠났을까 나름의 이유를 생각했고, 상심해 있을 엄마한테 먼저 전화를 해야지, 지방 출장 간 남편한테는 올라오면 말을 하고, 아들들한테는 또 어떻게 말할까 등 슬픔보다는 주변 가족들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산을 내려오는 계단을 밟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소리 없이 눈물, 콧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지, 지금 내가 많이 슬픈 건가? 집에 올 때까지 멈추어지지가 않았다. 가끔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있던데 오늘 정이에 대한 마음이 그런가 보다. 처음부터 밀어내려 했던 존재로 내게 왔지만 어느새 마음속 한자리를 크게 차지해버린 정이, 겁이 많았지만 자유로웠던 개, 정이가 오늘 떠났다.



두 아들이 1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밥과 빨래, 용돈만 적당히 주면 엄마가 달리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처음으로 젖을 물리던 순간이 기억난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아기였지만 어쩐지 어디에 찰칵 갇혀 버린 듯한 기분 말이다. 드디어 그 고물거리던 아기가 커서 자기만의 세계를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 이제 엄마도 특별할 건 없지만 접어 두었던 세계를 다시 열어 볼 시간인데, 은근 썰렁하게 설레고 있는데, 느닷없이 남편이 개를 한 마리 데려오고 싶단다. 친구네 개가 새끼를 낳아 한 마리 데려가라 했다고. 무조건 안된다고 했다! 마침 조그만 마당이 있는 집에 이사한 시점과 맞물려 마당에서 키우면 된다고 남편과 아들이 거듭 설득했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제야 어딘가에서 놓여난 기분인데 다시 생명이 있는 걸 돌보아야 된다니... 이젠 돌볼 수 있게 되었지만...  또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동물이라고 어떻게 적당히 하면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은 때가 되면 독립이라도 하지 개는 끝까지 돌봐야 되는데, 아니 될 일이었다.


며칠 후, 어디서 술을 한잔 했는지 얼굴이 선홍빛이 되어 들어온 남편이 호주머니에서 고물거리는 걸 기어이 꺼내고 말았다. 이렇게 작은 새끼 개가 있다니! 쥐만 한 크기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바닥에서 바들거리고 있는 그 약하디 약한 존재를 보고 있자니 와락 품에 안아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말은 매몰차게 나왔다. 난 못 돌보겠으니 다시 데려다주던지 당신들이 키우라고. 남자들은 그러겠다 하고 낮이면 사무실로 학교로 가버렸다. 아직 마당에 두긴 위험하다고 밤엔 2층 옥상으로 나가는 계단참 끝에, 낮엔 햇볕 있는 옥상에 있게 된 새끼 개, 모두 정씨인 집에 왔다고 '정이'라는 이름까지 결국 갖고 말았다. 겨우 새끼 면하고 강아지 모습을 갖출 때까지 정말 난 돌보지 않았고 남자들이랑 놀 때 곁눈질만 하고 부러 무심해지려 애썼다. 정이는 옥상에 있고 난 주로 집안이나 앞마당에 있으니 저녁에 정이의 보호자들이 오기까지는 마주칠 일도 없었다.


그날도 대낮에 정이와 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옥상에서 깨갱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심히 넘겼다가 아무래도 계속 들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집안 계단을 통해 옥상문을 덜컥 열어 보았다. 눈 앞에 나타난 광경이라니! 1분만 늦었어도 어린 생명은 저 세상으로 갈뻔한 순간이었다. 어디서 까마귀 떼들이 몰려왔는지 눈을 번뜩이며 정이를 에워싸고는 소리로 위협하면서 사나운 큰 놈이 막 물려던 참이었다. 가엾은 정이는 움츠리고 깨갱거리며 벌벌 떨고 있었고, 그 모습을 목격한 난 반사적으로 '정이야!!!'를 외치며 달려가 냉큼 안고는 미친 듯이 까마귀 떼를 쫓았다. 정이 엄마가 되어버린 순간이다. 매도 아니고 까마귀가 업신 여긴 작고 약한 개는 그렇게 내 몫이 되었다. 이미 마음에는 결심이 서 있었는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쩌면 아이는 부모의 그릇만큼 담기는 것처럼 정이도 우리식으로 키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집안에 들이는 개로 데려오지 않았기에 옥상에서 그 일이 있음에도 바깥 계단 밑 공간으로 집을 옮겼고 마당과 옥상을 왔다 갔다 하며 놀게 했다. 추위와 더위도 온몸으로 맞아 일 년에 털갈이를 두 번씩 해 따로 목욕을 시키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한쪽 발에 인대가 늘어났지만 자연 치유력을 믿어 시간으로 회복시켰다. 당연히 줄에 묶어놓은 적도 없어 따로 산책이 필요 없었고 오히려 목줄을 하고 대문 밖을 나가는 걸 두려워했다. 한마디로 마당 안 개구리가 아닌 개였지만 오래전 사람에게 길들여진 동물에게도 조상인 늑대의 야생성을 조금은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최대한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했다.


정이가 마당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이러하다.


길쭉한 마당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달리기

고양이랑 맞짱 뜨기(배를 할퀸 적이 있다)

참새들이랑 쫓기 놀이 하기

풀 뜯어먹고 야생화 냄새 맡기

좀씀바귀 꽃무리에서 곤히 낮잠 자기

늦가을 낙엽 밟기(한밤중 방에 누워 들으면 예술이다)

콧등에 흙이 송송할 정도로 땅파기

택배 아저씨만 보면 죽어라 하고 짖기


우리 가족이 주택에서 살았던 기간은 정이랑 함께 했던 기간이랑 같다. 마당 있는 집에서 7년만 살 줄 알았으면 정말 정이를 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쩌면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사코 반대했는지도 모른다.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뜻밖의 일이 생겼다. 불확실한 미래지만 일단은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 정이를 데려갈 환경을 만든 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또 바깥에서 키우던 애를 갑갑한 아파트에 데려간다는 것도 서로 불행한 일이 될 것 같았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이별을 하더라도 마당이 있는 시골 엄마한테 보내기로 했다. 엄마도 아버지 떠나보내고 적적하셨는지 약간의 주저는 있었지만 받아들였다. 데려다준 날 울고불고 신파는 없었지만 우리 차가 떠나자 저만치 따라오던 광경을 뒤로하고 왔기에 모두 집에 올 때까지 말을 잃었다. 바람 불고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정이가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고는 얼마나 노심초사했던지. 서너 번 이렇게 집 나가는 일을 반복하더니 개도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할머니한테 음식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우린 정이한테 상처를 주었고 정이는 살기 위해 적당히 타협을 했다. 가끔씩 가도 여전히 정이는 배를 내밀며 우리 가족을 주인으로 대접해 주었다. 그러니까 더 짠하고 미안했다.


처음부터 사료는 기본으로 먹였지만 사람이 먹는 음식을 너무 좋아해 가끔씩 주었다. 그러면 수명이 짧아진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얼마나 오래 살까 싶어 반반을 유지했는데, 엄마는 아예 옛날 식으로 아무 음식이나 마구 먹였다. 한 번씩 잔소리를 했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애를 어떻게 할 수 없어 간섭을 그만두었다. 정이가 좀 일찍 간 거는 아마 음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이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순전히 주인 마음으로 먹고 싶어 하는 거 먹이고 조금 일찍 보내도 된다였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누구를 위한 생각이었는지 혼란스럽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언니 말과 달리 의외로 씩씩한 척한다. 일주일 전부터 먹을 걸 거부하더니 결국 가고 말았다고, 여러 번 개를 키웠지만 자기 손으로 묻기는 처음이라고, 나무 심어 놓은 논에 마침 나무 파간 구덩이가 있어 먹을 걸 넣어서 잘 묻어 줬다고, 자기는 영감도 보냈는데 개 한 마리 보낸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디 갈 때 신경 쓸 일이 없어 잘되었다고... 자기 말만 바쁘게 하고 끊어 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의 부재가 나이만큼 쓸쓸함을 불러오리라는 걸 안다. 그나마 혼자 있는 집에서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상대였고 현관문만 열면 온 몸으로 반겨주고 먹을 게 있으면 생각나는 사이였는데 그 마음이 오죽할까. 이래저래 엄마한테도 정이한테도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계속 울컥하고 착잡하다.


가끔 90을 코앞에 둔 엄마랑 정이랑 누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날까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왔는데, 결과적으로 또 순전히 사람의 입장에서 정이가 먼저 떠난 게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겨진 엄마는 우리가 보살필 수 있지만 정이가 남겨지면 이젠 더 이상 보낼 때가 없다.

정이야, 그렇게 길진 않은 기간이었지만 우린 너를 사랑했어. 우린 사랑했지만 넌 사랑 한번 해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구나. 백만 번 산 고양이처럼 넌 또 태어나겠지. 부디 다음 생이 마지막이길. 너의 사랑이 주체가 되는 다음 생을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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