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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Mar 21. 2021

빈 화분

생명이 꿈틀거리다

             

           꽃밭과 순이

                                       - 이오덕


분이는 따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

경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한다.

복수는 백일홍이 아름답단다.

그러나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순아, 넌 무슨 꽃이 더 예쁘니?

채송화가 제일 예쁘지?

그래도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순이.


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

꽃밭을 빙 둘러 새끼줄에 매여 있는 말뚝

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거꾸로 박혀 생매장당한 포플러 막대기가!



이 시를 읽은 날, 이루 말할 수 없는 강한 생명력 앞에 오금이 저려왔다.


봄의 기운, 생명의 기운이 말없이 솟고 있다.

덩달아 베란다 화분들에게도 눈길이 머문다.

여긴들 봄이 비껴갈 수 있으랴!


빈 화분에서 돌나물 비슷한 게 올라오고 있다.

길가다 나팔꽃 씨앗 심으려고 흙을 조금 덜어 왔을 뿐인데

청소할 때 물을 끼트렸을 뿐인데

따라온 생명이 얼굴을 말갛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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