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꿈틀거리다
꽃밭과 순이
- 이오덕
분이는 따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
경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한다.
복수는 백일홍이 아름답단다.
그러나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순아, 넌 무슨 꽃이 더 예쁘니?
채송화가 제일 예쁘지?
그래도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순이.
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
꽃밭을 빙 둘러 새끼줄에 매여 있는 말뚝
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거꾸로 박혀 생매장당한 포플러 막대기가!
이 시를 읽은 날, 이루 말할 수 없는 강한 생명력 앞에 오금이 저려왔다.
봄의 기운, 생명의 기운이 말없이 솟고 있다.
덩달아 베란다 화분들에게도 눈길이 머문다.
여긴들 봄이 비껴갈 수 있으랴!
빈 화분에서 돌나물 비슷한 게 올라오고 있다.
길가다 나팔꽃 씨앗 심으려고 흙을 조금 덜어 왔을 뿐인데
청소할 때 물을 끼트렸을 뿐인데
따라온 생명이 얼굴을 말갛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