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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May 14. 2021

찬실이들

이찬실 아줌마의 가구 찾기/ 박미라


찬실이란 이름이 주는 이미지가 있나 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란 영화를 보았기에 여기 나오는 이찬실 아줌마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두 사람 다 딱히 이루어 놓은 게 없는 나이 먹은 싱글녀다. 일도 사랑도 … 그렇다. 누군가는, 어쩌라고???! 가 되겠지만 어쩔 건 없지만, 그냥 짠한 캐릭터라는 거다. 짠한 이들이 계속 짠하게 있으면 영화도 동화도 나아가지 않는다. 짠한 그녀들은 성장해야 한다. 성장보다는 이 분들의 나이에 맞게 발견이라고 하는 게 더 좋겠다. 영화 속 찬실이가 진짜 복도 많게 주변 사람들과 좌충우돌 토닥토닥하며 자신을 찾아간다면 이찬실 아줌마는 훨씬 더 외로운 존재가 되어 고군분투한다. 버린 가구를 다시 찾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나 하면서.


이찬실 아줌마가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어른이 된 건 순전히 엄마인 송정 할머니 탓이다. 살면서 얼마나 사람들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으면 하나뿐인 딸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렇게 말할까.

사람은 깊이 사귀어 봤자 상처만 받아. 내 맘 같지 않은 게 세상이야. 너를 알아주는 건 나뿐이야. 떠들썩하게 살아 봤자 돌아오는 건 없지. 조용히 사는 게 나아.(p39)


‘너를 알아주는 나’가 평생 곁에서 알아주고 지켜주면 좋겠지만 누구나 그렇듯 송정 할머니도 보통 사람들처럼 혼자 이 세상을 떠난다. 무엇보다 유일한 가족이자 얘기 상대였던 엄마가 돌아가시자 찬실 씨는 한동안 말을 잃고 산다. 정신을 차릴때쯤 집에 있는 가구들을 상대로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기운을 내어 인생을 리셋하기로 결심하는데, 새 집으로 이사를 가고 모든 집기들과 가구를 새 걸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주변을 바꾸면 찬실 씨 본인의 인생도 덩달아 바뀔 거라 확신하면서.


… 다 계획이 있어도 계획은 종종 우리를 배반하지 않나. 이사 간 첫날, 그리고 적어도 적응하는 시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 날이 갈수록 찬실씨는 더 무기력해지고 기분이 살아나질 않는다. 꿈꾸던 꽃무늬 벽지에 반짝이는 고급 가구, 가볍고 뽀송뽀송한 거위털 이불까지, 여왕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부웅 뜨는 기분도 맛보았지만 갈수록 새집은 낯설어지고 외로움만 주변에 스멀거린다.


점점 높아만 가는 외로움과 그리움은 급기야 분노가 되어 터져 버렸고, 퍼뜩 떠오른 생각은 발길을 이사 나온 동네로 향하게 한다. 여전했지만 찬실씨가 찾는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잠깐 다녀온 그곳의 공기, 사람 소리는 찬실 씨에게 기운을 불어넣었는지 찾고 싶은 물건을 위한 전단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정말로 다시 태어난 게 아닌데 어떻게 지나온 세월을 부정할 수 있을까. 자신을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세월이 담긴 손때 묻은 가구들을 찾기로 결심한 건 어쩌면 손에서 놓쳐버린 풍선같은 신세가 된 자신을 붙들고 싶은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뜻밖에도 기억을 되살려 가구를 그리는 과정에서 찬실 씨는 행복한 기분에 빠져든다. 밤새워 만든 미술작품 같은 전단지가 찬실씨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찬실 씨도 영화 찬실이처럼 알고 보니 복이 많았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성에서 나오지 않아 발견 못했을 뿐이지 용기를 내어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디딘 순간 여기저기 내미는 손길들에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란 걸 발견할 일은 곳곳에 있었다.


버린 가구를 다시 찾는 찬실씨 이야기를 보니 얼마 전 집에 들인 작은 의자에 눈길이 머문다. 아래층 할머니가 버린다고 들고 나온 걸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달라고 했다. 작은 통원목 의자가 튼튼해 보여 쓸모가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빈티지 느낌이 좋았다. 할머니는 아들 어릴 때 책상이랑 세트로 비싸게 주고 샀지만 이젠 오래되어 버릴 때라 하셨다. 다름 이유가 있겠지만 내 눈에는 멀쩡해 보였다. 덕분에 마음에 드는 의자가 생겨 좋았지만 …, 찬실씨처럼 마음이 바뀌면 언제라도 돌려드려야겠다. 의자가 품고있는 세월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 세월 속엔 어떤 모자의 이야기도 담겨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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