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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May 13. 2021

눈물차

<집에 있는 부엉이>, 아놀드 로벨


집에 있는 부엉이는 인정스럽다.

늙고 가엾은 겨울을 집에 들였다가 온 집안과 음식이 얼어붙는다.

집에 있는 부엉이는 예민하다.

발 때문에 봉긋하게 올라온 발치 이불 모양을 보고 혹이라고 난리 피우다 잠을 설친다.

집에 있는 부엉이는 욕심이 과하다.

아래층과 위층 동시에 있고 싶어 한다.

집에 있는 부엉이는 부담스럽지만 좋은 친구를 두었다.

끝까지 따라와 잠자리까지 밝혀주는 친구, 달.


(이 황당한) 집에 있는 부엉이는 밤에 가끔 눈물차를 마신다. 슬픈 일들을 생각하며 주전자에 눈물을 모은다.

다리 부러진 의자들…

부를 수 없는 노래들(가사를 잊어서), 흑!

난로 뒤에 떨어져 다시 못 본 숟가락들, 흑!

읽을 수 없는 책들(몇 장이 찢어졌거든), 흑흑!

멈춘 시계들, 흑흑!

모두들 잠을 자는 바람에 아무도 보지 않는 아침들… 우아앙;;;;


! 울음을 그치고 눈물이 모인 주전자를 난로에 끓여 차를 따를 때 부엉이는 행복한 기분이 든다. 짭조름한 맛의 눈물 차는 언제나 최고, 라고 혼자서 들을 사람도 없는데 말을 한다.


어린이 책방에서 아이들을 만나던 시절, 1학년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반응이 꽤 좋았던 책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우리도 눈물 차를 만들어 볼까, 자 슬픈 일을 한 가지씩 생각해보자, 하며 주전자 대신 컵을 들이대면 대부분 아이들은 부끄러워하거나 눈만 멀뚱 거리고 있다. 그중 앉아있는 걸 힘들어하던 현진이라는 아이는 좀 달랐다. 평소보다 집중해 들었을 뿐 아니라 진짜로 눈가가 발개지며 슬픈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남해 외할머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서 엄마가 슬퍼요. 그래서 나도 슬퍼요,” 현진이가 물꼬를 터자 다른 아이들도 나름 한 가지씩 슬픈 이야기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모은 눈물 차를 나눠 마셨던 그날 우리들은 어느 날보다 밝은 기분으로 헤어졌다.


요즘 집에 있는 계영이도 부엉이를 닮아가고 있다. 함께 사는 두 남자가 자주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시간 많고 생각 많아지니 쓸데없이 인정스럽고 예민해지고 , 작은 소망이 많아졌다. 사실은 별 것 아닌 듯 들리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작은 소망들로 온 가족에게 부담을 주니까.


* 마지막 문장은 <두 손 가벼운 여행/ 토베 얀손>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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