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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주 생명의 푸가

by 여름지이

우주 생명의 푸가라! 바흐 음악에 많이 사용되는 다성음악, 돌림노래 형식인 '푸가'가 우주 생명들의 다양함, 화려함, 장엄함으로 비유되다니. 반면 지구 생물학은 단성부, 단일 주제 형식의 음악, 예를 들면 풀피리 하나로 연주되는 음악이라고 했다. 외로운 풀피리 소리와 푸가! 당연히 우리는 푸가 음악도 듣고 싶다. 화려한 푸가 음악을 들어야만 맑고 단아한 풀피리 소리를 더 잘 듣고 이해할 수 있으니까.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리 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우주 음악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교차하는 다성분 대위법 양식의 둔주 곡을 기대한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그래서 먼저 풀피리 음악의 정수인 진화 생물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구 생명에게 일어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라 했다. 그렇지만 서서히 변화하는 억겁의 시간을 상상하지 못하는 인간은 현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진화 이전 서구인들의 세계관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위대한 설계자'에 대한 생각은 이러하다.


아주 단순한 단세포 생물마저 가장 정교하다는 회중시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뿐만 아니라 회중시계는 자기 조립이 불가능하다. 회중시계는 진자로 작동하는 벽시계에서 전자시계로 서서히 여러 단계를 거쳐 저절로 진화한 것이 결코 아니다. 시계가 있으면 그 시계를 만든 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

위대한 설계자가 모든 생물을 정성 들여 만들었다는 생각은 모든 자연현상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했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아 주었다.(..... )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마음에 들어하는,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생물 세계에 대한 전적으로 인간적인 해석인 것이다.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슨은 시계공 즉 위대한 설계자를 '눈먼 시계공'이라 비틀기도 했다. 안 보이니 우연에 의존할 수밖에. 결국 눈먼 시계공은 설계자의 존재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진화의 원동력인 자연선택인 것이다. 자연선택은 시간과 우연으로 생명의 소리를 더 아름다운 음악으로 만들어 왔다.


진화의 비밀은 죽음과 시간에 있다. 환경에 불완전하게 적응한 수많은 생물들의 죽음과 우연히 적응하게 된 조그마한 돌연변이를 유지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 말이다. 유리한 돌연변이 형태들이 서서히 축척되기 위한 긴 시간이 바로 진화의 비밀이다. 다윈과 윌리스에게 퍼부어졌던 그 엄청난 반대의 목소리도 적어도 일정 부분은, 억겁의 영원은 고사하고 수천 년조차 상상하기 힘들어하는 인간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지 70년밖에 살지 못하는 생물에게 7000만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그것은 100만 분의 1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하루 종일 날갯짓을 하다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알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식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불안, 욕심 등 인간의 부정적인 생각들은 우리의 삶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사실 길고 짧음의 차이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왜 말기 암환자만 삶을 관조해야 할까. 누군가는 지금을 가치있게 살아가려는 원동력이 아침마다 음미하는 '죽음'이라는 단어라 했다. 죽음과 삶은 동전의 앞뒤처럼 공존한다는 걸 진화의 시간은 말해 준다.


DNA에 관한 이야기는 잘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이 부분이 눈에 띈다. 미래에 바람직한 특성을 인간에게 부여하기 위해 뉴클레오티드를 우리 맘대로 조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했는데 요즘 행해지고 있는 ‘유전자 편집’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면서 동시에 불안에 떨게 하는 미래의 단면이라고? 오늘날 우리는 정말 그러고 있지 않은가.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가깝다 했다. 생물학과 역사학의 공통점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라는 작은 세상이 들려주는 생명의 음악만 들어온 우리는 이제 우주를 가득 채운 생명들이 연주하는 푸가의 한 성부뿐만 아니라 남은 성부, 웅장한 우주 생명의 푸가를 듣자고 제안한다.

외계 생명을 찾는 일은 우주 생명들을 알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표라고 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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