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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Mar 19. 2020

밥은 똥이 되나 똥이 밥이 되지 않아서 생긴 일


식구들 모두 먹은 것 대비 많이 배출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 변기가 막히는 일이 일어난다. 얼마 전까지 살았던 오래된 주택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창고에는 변기 뚫는 다양한 기구들이 있었으니.

작년 남양주로 이사 오며 짐을 많이 줄여야 했기에 일반적인 기구 한 개만 남겨 두고 과감하게 그것들을 버렸다. 좀 오래된 아파트지만 설마 주택만큼 그런 일이 일어나겠나 싶어서다. 실제로 몇 개월 살아보니 통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남겨둔 한 개 마저 처분해 버렸다. 눈에 띌 때마다 예전 일이 떠올라 찝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울로 접어 드니 변기통도 우리 몸처럼 순환이 잘 안되는지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것도 내가 전용으로 쓰는 안방 화장실에서. 전에는 주로 아들들이 일을 저질러 놓고 학교로 내빼버려 아빠가 팔을 걷어 부치고 씩씩거리며 뚫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어떡하나... 내가 한 일이 분명한데.

차마 식구들한테 처리해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막힌 변기통처럼 내 가슴도 탁~ 막혀 왔다.


차오른 물이 빠지길 기다리며 머리를 싸매고 가장 내용물을 맞닥뜨리지 않고 뚫는 방법을 고민했다. 비위가 약해 현장을 슬쩍 곁눈으로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아이들과 읽었던 <똥이 되는 밥, 밥이 되는 똥> 글 제목을 읊조리며 초연해 보려 애를 썼지만 그런 생태적 삶을 살지 않는 난 과보를 받는 듯 괴롭기만 하다.

똑똑한 폰에 떠도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았지만 실행할 엄두가 안 나고...  혹시나 싶어 <보물창고>라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가게로 가보았다. 그동안 획기적인 뚫어뻥 기구가 나왔나 해서다. 특별한 게 없었고 결국 정면 돌파하는 게 그래도 최선일 것 같아 마지막에 버렸던 가장 원초적인 그 기구를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사들고 왔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사온 제품의 비닐을 벗기려는 순간,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다음 일이 떠올라 그 물건을 쓸 수가 없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시 폰을 뒤적이다 랩으로 변기를 밀폐하여 뚫는 방법을 발견했다. 비슷하게 비닐로 해본 적 있는데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 다시 시도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그런데 랩으로 한다면 훨씬 쉬울 것 같아 ‘아싸, 이거다!'싶어 쓰려던 기구를 싸들고 보물창고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대형 랩을 찾아들고 기구랑 바꾸려 계산대로 갔더니 주인아줌마가 무표정한 얼굴로, “뚫었어요?” 그런다. 이 아줌마가? 나는 네가 하는 일을 다 알고 있다는 저 말투. 살짝 민망해, “아... 네, 이것보다 랩으로 한번 해보려 구요. 바꿔 주세요...."  랩을 둥쳐 들고는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다.


랩도 생각만큼 밀폐가 잘 되지 않아 테이프로 가장자리를 감느라 엄청 애를 먹었다. 이거야말로 하다가 정말 누르던 랩이 터지기라도 하면??? 정면 돌파 이상의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단단히 밀폐 확인을 하고... 심호흡과 함께 물 밸브를 천천히 내리니, 과연 비닐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운동회 때 백 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선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땅!’ 총소리에 맞추어 출발하듯, 두 손 모아 부풀어 오른 랩을 눈을 질끈 감고는 힘껏 눌렀다. 그런데, 그런데, 시원하게 내려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또 물이 차오르지 뭔가... 도대체 얼마나 눌러야 되는 거야? 막 외치고 싶었다! 이렇게 애를 썼는데 실패하다니... 그러고 나니 오기가 생겨 꼭 뚫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더욱 불끈해졌다. 처음이라 겁먹어 마음껏 누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랩을 점검하고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 변기 뚫는 일이 처음이자 끝인 시간들이 흘렀다.

온 마음을 모아 물을 올리고, 이번엔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힘~껏 내리눌렀다.

“슈~우웅~ 콸~~!” 드디어 뚫렸다! 얼마나 후련하고 감격스러운지 혼자서 껄껄 웃음소리가 나왔다.


... 여기까지가 지난겨울 일이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새벽 1시, 왜 잠도 안 자고 이런 지저분한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냐면... 잠이 도무지 안 오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엔 차오른 물이 아예 내려가지를 않는다. 그 현장을 바로 옆에 두고 잠을 청한들 신경들은 촘촘한 성게 가시 모양으로 각성 상태다. 화장실 문을 꼭 닫고 있지만 안방이 찜찜함으로 도배된 느낌이다.


얼마나 막혔으면 담날이 되어도 물 한 방울 빠지지 않는 걸까. 할 수 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내용이 있는 물을 퍼내었다ㅠ. 그토록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일을 대면했지만... 희한하게 서서히 내 감각들은 무뎌지고 있었다.

저번처럼 랩으로 시도를 해 보았으나 이번엔 넘치기까지 하며 캭~,  꿈쩍도 안 한다.


마지막 보루인 설비업체에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말했더니 변기를 뜯어야 된단다. 비용은 10만 원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십만 원이나 주고 사람을 불러야 되나...???

한참 고민하다가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폰을 뒤적이며 더욱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 헤맸다. 십만 원이 걸린 문제니 이것저것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변기 물까지 퍼내고 보니 이젠 더럽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마침내 두 가지 방법을 함께 해보기로 했다. 옷걸이를 펴 변기 구멍을 마구 쑤시고 샴푸를 푼 뜨거운 물을 낙차를 이용해 위에서 들입다 붓기.

십만 원에 목숨 건듯 미친 듯이 변기 구멍을 쑤시고 양동이 펄펄 끓는 물을 높이 쳐들고는 위에서 부어 재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우루 룩 콸콸~ 어마어마하게 큰소리를 내며 진짜 뚫렸다!

마침내 난 변기 뚫기 전문가가 되었다ㅠ ㅠ.

이물질이 아닌 것으로 막힌 변기는 이젠 얼마든지 뚫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생활 어딘가가 막힌 듯 안정이 안 되고 맘이 불편했다. 밥은 똥이 되나 똥이 밥이 되지 않으면서 모든 곳에 깨끗함을 추구하는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뒷간이 집안으로 들어와 한통속이 되어 있다. 깨끗함으로 치장했지만 한 번씩 탈이 나면 이런 웃픈 일이 벌어진다.

옛날 뒷간은 밥이 똥이 되어 모이고, 똥은 다시 밥을 키우는 거름으로 태어나는 순환의 중요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뒷간을 중히 여겼고 따로 두어 그 기능을 활발히 할 수 있게 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불결한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오죽했으면 뒷간 측신 이야기를 만들어 부엌 쪽은 쳐다보지도 말게 하지 않았던가.


볼일을 시원하게 보고 애써 외면하며 변기 뚜껑을 탁 닫고 물을 싹~ 내리면 몸도 마음도 순간 개운해진다.

하지만 그날 이후, 마음 한구석 불편한 마음은 언제라도 고개 들 자세를 하고 나를 비웃고 있는 듯하다.


*똥떡/ 이춘희/ 사파리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 이현주외/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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