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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un 07. 2020

수건 관계도

수건을 개다가

물끄러미 글자가 보이던 날,

한 사람의 인생이 엮어졌다.

해주 정 씨 정**님은 경남 진주 귀곡동에서 태어났다. 님의 할아버지는 진사 벼슬에 주변 이웃들에 대한 공덕이 널리 알려져 후손들이 행적비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비봉산 아래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정착해 동창생, 동기생들과 '봉소회', '비봉회'라는 모임을 조직하여 80 평생 친목을 다지고 있다. 1960년대 말, 고향마을 귀곡동(당시는 진양군)이 남강댐 사업으로 마을 전체가 수몰되어 이북 실향민 아닌 실향민 신세가 된다. 매년 가을이면 귀곡 실향민회에서 잔치를 벌이고 고향 잃은 아픔을 서로 나눈다.

우리 집에 있는 수건들이니 누구의 인생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 바로 시아버지 이야기다. 어디 행사 가서 받는 수건 한 장도 살림밑천이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챙겨

자식들 집에 수건 떨어질 날 없게 만드신다.


가끔 ~회, ~기념 글자가 어김없이 박힌 수건들을 얼굴과 몸에 비빌 때마다 숨이 턱 막혀올 때가 있다. 현재의 나로부터 시작된 인식하지 못했던 관계들이 우두둑 쏟아져 나와 사방에서 거미줄을 척척 쏘아 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아악~ 소리를 지르며 달라붙는 거미줄을 떼어내려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더 칭칭 감겨 아예 고치가 되어 나는 형체가 없어진다.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날이 있을 거라고?


글자 없는 수건에 얼굴을 묻었다가 마알간 얼굴을 내밀고 싶다.


도대체 이 수건은???

우리 집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장소를 거쳤을까? 짐작되지 않는 경로지만 어쩌다 여기까지 오고 말았네. 이 넓은 우주에, 지구에, 대한민국 남양주 덕소에서 숨 쉬고 있는 내 모습처럼.


엄마! 내가 갔다 왔어!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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