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인간의 친구

솔로몬의 반지 10 - 동물의 충성심 편

by 여름지이

* 이 책은 1949년에 발행되었고 비교행동학 연구자 관점의 책입니다. 쉽게 풀어 쓰려했지만 특정 단어와 색깔이 다른 부분은 책 속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고양이를 제외한 모든 가축은 잡아 가두어 기르면서 시작되었다. 고양이가 오늘날까지 왜 진정한 가축이 아닌지는 이미 우린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가축은 노예나 다름없는데, 오직 개dog만 친구이다. 서로 친구가 된 방식은 저자 콘라트 로렌츠에게 유쾌하고 뿌듯한 일이었다. 옛 동맹 관계 체결 당시 인간과 개 서로는 어떤 강제성 없이 자유의사로 서명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서로 윈윈 관계라고나 할까.


개의 조상인 야생의 재칼이 있다. 석기시대 최초의 가축인 토르프슈피츠가 재칼에서 유래했다고 단정했다. 이 재칼과 인간이 우연히 엮인다.

상황 1. 재칼의 무리가 석기시대 떠돌이 사냥꾼들을 따라다니다 그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를 탐하면서 주변에 살기 시작한다. 호랑이나 동굴곰 같은 큰 맹수가 두려웠던 사냥꾼들은 재칼들을 물리치려 하지 않았다. 적들이 접근해 오면 재칼들이 있는 곳에서 먼저 큰 소동이 일어나 그사이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 2. 먹이를 위해 사냥꾼들 가까이 있게 된 재칼 무리가, 언젠가부터 야생 동물을 추적하고 심지어 사냥꾼들 앞에 서기도 했다. 잡은 포획물을 당연히 조금 얻어먹었을 것이고 이전에 먹어보지 못한 큰 야생동물 고기맛이 신세계였는지 인간들에게 그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기까지 한다. 나아가 개들은 언제 자신들이 엄호를 받게 되는지 빠르게 알아채고는 강한 인간 친구들의 지원하에 형편없는 강아지도 용감한 싸움꾼이 되는 것이다.


아직 원시적 상태에 있던 개들은 인간에 대해 간접적인 복종 관계를 갖는다. 개들 무리는 우두머리 개에게 복종하고, 우두머리 개가 인간에게 복종하는 식이다. 개 무리와 인간은 직접적인 복종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지도자 개만 주인의 개인 셈이다. 알래스카 썰매개에서 이 관계가 아직 남아있다.

더욱 놀랍고 수수께끼 같은 일은 여러 환경을 거치며 적응을 잘한 좋은 개는 주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짧은 기간에 갑자기 관계가 형성되고 인간 사이의 어떤 관계보다 몇 배 더 단단하다. 로렌츠의 경험으로는 금빛 재칼에 늑대 피가 섞인 개가 가장 충성스럽다고 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량종의 개들은 동료 개를 더 이상 무리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사람 무리의 우두머리를 지도자로 간주하게 되었다. 가족 중 가장인 아버지를 주인으로 섬기는 경향이 있다는데, 요즘은 집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 같다. 야생종은 새끼 때만 어미에게 애정이란 것을 보였지만 순화된 집개는 일생 동안 그것이 지속되어 주인에 대한 변하지 않은 충성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순수하고 위대한 개의 사랑은 인간에게 옮겨진 우두머리에 대한 추종과 지속적인 것으로 바뀐 새끼의 애정이 결합된 것이다.


집에 키우는 나의 개 기질의 근원은 어디일까?

개의 조상은 재칼종과 늑대종으로 크게 구분하는데 인간과 더불어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개는 이 두 종이 반반 섞인 경우라 했다. 두 종의 기질은 정말 확연히 달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재칼종이 천진난만한 아이라면 늑대종은 너무 진지한 어른이다. 재칼종은 주인이 부를 때 어느 경우든 의무감으로 유쾌하게 달려오며, 날카롭게 부르면 부를수록 더 확실하게 달려온다. 늑대종은… 날카롭게 부른다면 절대로 오지 않는다. 대신 멀찌감치 떨어져 정다운 몸짓으로 부르는 당신을 달래려 한다. 그러니까 사람한테 잘 치대고 까불고 등을 바닥에 대고 잘 드러눕는 개는 재칼의 피가 흐르는 것이다. 진지한 늑대종은 주인인 당신에게 전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복종한다. 그럼에도 친구로 있지 결코 노예는 되지 않으며, 당신을 떠나서 살지 못하지만 자기의 개인적 생활만은 확실히 지킨다. 개다움을 지키는 늑대종, 멋지지만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상황 즉 진짜 주인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주인을 잃어버렸을 경우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떠돌이 개로 전락하고 만다. 혹은 인간 곁에 있더라도 고양이가 된다. 정신적 유대감 없이 산다는 것이다.


공원을 걷다 보면 산책을 위한 꽤 많은 반려견들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유모차에서 아기보다 강아지를 더 많이 발견한 날도 있다. 로렌츠가 살았던 그 당시 유럽은 이미 반려견 문화가 일상화되었던 만큼 발달된 교배, 육종 기술 그리고 건강한 관계에 대한 그의 고민이 있었다. 유행이나 애완을 위한 기술, 사육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개, 정상적 영혼을 가진 자연적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호견이나 경비견 같이 특수 목적이 있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인간에게 개가 갖는 가치는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므로.

당신의 개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숲 속에서 나를 따르는 야생 동물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즉 인간이 문명을 가지면서 잃어버렸던 자연의 실체를 다시금 인간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나는 우중충한 낯선 도시에서 내 뒤를 따르는 개가 아주 필요했고,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은 바 있다. 그것은 고향의 깊은 숲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과 같고, 영화 내용과 같은 인생유전(人生流轉)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 자신이라고 말하는 어떤 존재에서 마음의 안정을 구하는 것과 같다. 나에게는 내 개의 충성스러움만큼 이것을 분명하고 마음 편하게 약속해 주는 것이 없다.




작년 2월 1일은, 전날 비가 촉촉이 내리고 마치 봄이 거의 온 듯 날씨가 포근했었다. 그날의 공기를 세세히 기억하는 건 키우던 개, 정이가 죽은 날이여 서다. 정확히 말하면 마당에서 키우다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환경이 되어 시골 운자씨 집으로 보낸 개다. 이 글을 쓰며 떠난 정이가 보여준 여러 성향들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 부분도 있고 정이에 대한 나의 마음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한테서 막 벗어날 때쯤 불청객처럼 찾아온 반갑지 않은 만남이었다. 책임지기 싫은 마음, 돌봄의 대상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걸 늘 곁에서 지켜본다는 건 사랑이 싹트기 좋은 조건이다. 거기다 나만 보면 반가워하고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봐 주는데 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길지 않았던 정이의 생애가 우리 가정의 부침과 맞닿아 헤어진 상태에서 떠나 버린 게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친구이기보다는 그렇다고 애완도 아니었지만, 결국 엄마의 마음에 머무르고 말았다.

다시 개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오래 함께 살아 나아가는 관계가 되기를.

나는 나이를 더 먹을 것이고 책임과 의무감에서 벗어나 온전한 내 모습에 조금 더 가까이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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